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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우성사 기획실에 근무하던 시절, 임권택 감독의 <왕십리>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데 추석에 상영할 만한 영화기획을 해보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추석까지는 약 6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그 무렵 프랑코 제프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았는데, 15세의 올리비아 허시, 그리고 제프렐리 감독의 신선하고 빠른 스토리 전개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전극 처리에는 저런 방법이 현대감각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영화를 추석에 상영할 것인가? 고심 끝에 <성춘향전>을 기획하기로 했다. 그러나 툭하면 리바이벌 제작되곤 하던 ‘춘향전’이었기 때문에 기획단계부터 세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색다름이 있어야만 했다.

우선 각본의 해석부터 현대적이어야 했다. 머리를 쥐어짰더니 여기저기서 이어령씨를 찾아가 보란다. 소설 집필, 대학 강의, 강연 등으로 몹시 바쁜 이어령씨를 찾아갔다. “하이틴 배우를 써서 성춘향전을 기획하고자 하는데, 이선생님의 각본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시나리오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쓸 작가를 구할 테니 각본구성과 방향 해석이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작가 김승옥씨에게 각본집필을 맡기면 기획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김승옥씨와 계약을 체결했다. 시나리오가 완성될 무렵이 되니 이번엔 감독과 하이틴 배우 선정이 장벽이었다. 현대감각이 물씬한 틴에이저 춘향과 이도령을 그려야겠는데 아무래도 젊은 감독이 좋을 듯싶어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박태원 감독을 내정했다. 그리고 십대는 아니었지만, 십대 스타 이미지를 지닌 이덕화가 이몽룡 역에 내정됐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춘향을 맡을 만한 십대 여배우가 없었다.

급기야 ‘성춘향전-하이틴 춘향을 찾습니다’라는 신인배우 공개모집광고를 냈다. 광고가 나가자 3백여 명의 후보들이 몰려왔다. 거의 대부분의 응모자들이 20세 미만이었다.

서류 및 사진심사를 통해 우선 20명을 가려냈다. 심사위원들은 일간지 영화담당 기자들과 감독, 원로영화인 몇 분, 그리고 영화사 중역진들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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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과 간단한 실기 테스트 날짜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영화계 선배이자 배우인 유춘수씨가 찾아왔다. 20명의 압축후보에 든 아가씨 중 한 명을 잘 알고 있는데 면접심사 전에 먼저 보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안 될 것 같으면 도중하차하는 방법으로 망신(?)이라도 피했으면 좋겠다는 게 이유였다. 내가 심사판정의 전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미리 합격여부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작품의 기획자니까 비슷한지 아닌지는 알 것 아니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사무실 가까이에 있는 다방에 지금 와 있으니 잠시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테스트에 응모해봤자 안될 것 같으면 아예 후보 사퇴(?)를 해 망신이나 면하겠다는데 봐 주는 거야 어떠랴 싶어 다방엘 갔다. 유춘수씨가 알려주기도 전에 내 눈에 환한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저 아가씨구나.” 했더니 “아, 사진을 봤으니 알겠구나” 한다. 사진을 보긴 봤지만 기억하는 얼굴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깨끗하고 환한 그 아가씨의 얼굴을 본 순간, 배우감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불쑥 “저 아가씨구나”했던 것이다.

그 아가씨와 합석을 했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은 장미희. 나이는 19세. 조심스럽게 웃을 때마다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빛났고 말소리도 촉촉했다. 깃이 없는 목선이 잘 돋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미녀의 조건을 고루 갖춘 아가씨였다. 자신을 갖고 테스트에 응해보라고 격려해주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장미희가 밖에 나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데 목과 귀의 솜털이 봄볕에 빛나는 금잔디와 같았다.

이윽고 심사일이 되었다. 20여 명의 아가씨들이 모였는데 역시 장미희는 눈에 띄었다. 그중에 앳된 여학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중학교 3학년 강주희였다. 티 없는 순진함, 맑은 눈망울, 환한 미소, 뜻밖에 장미희에게 위협적인 라이벌이 등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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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들은 1차로 20명중에서 12명을 추려냈다. 그리고 예상대로 장미희와 강주희 쪽에 시선들이 집중됐다. 최종 후보 2명을 뽑는데 장미희와 강주희가 올라온 것이었다.

두 후보를 놓고 심사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허시처럼 진짜 15,16세의 춘향이를 만들어야 기획의도와 맞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과, <춘향전>은 어쨌거나 러브스토리인데 여주인공인 춘향이가 중학생 나이 또래로 보여질 경우 관객들이 사실감을 느낄 수 있겠느냐 라는 의견이었다.

결국 투표에 돌입했다. 개표결과 영화담당 기자단의 몰표가 장미희에게로 쏟아져 강주희는 눈물을 머금고 말았다.

그해 추석에 장미희의 데뷔작 <성춘향전>은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했지만 흥행은 실패였다.

하지만 장미희는 좌절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계속한 끝에 2년 후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로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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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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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머나라 2008.08.05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사실이네요. 추억의 영화들이구요..

  2. pennpenn 2008.08.05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연 영화배우를 뽑는 비하인드 시토리
    잘 보앗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