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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80,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필자가 1993년에 인터뷰해 쓴 것입니다. 그 다섯 번째로 80년대 한국 영화의 음악을 도맡아 작곡했던 신병하씨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외모도 모더니스트 분위기를 풍기는 신병하씨의 음악은 결코 밝지 않다. 아니 밝지 못하다. 서정적이지만 고독하고 우울한 기색이 가득하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충무로에서 태어났다. 지금 라이온스 빌딩이 있는 곳 부근이 그의 고향이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을 좇아 양구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그 시절에 잊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영화 <안개마을> 보셨죠? 양옆에 나무들이 쭉 늘어서있고 버스 한 대가 지나가면 뽀얗게 먼지가 날아오르는 신작로가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길에 동생 업은 어머니가 한손에 누이를 다른 한손에 나를 잡고 걸어갔습니다. 버스가 왔죠. 어머니는 ‘너희 둘은 아버지와 잘 살아라’하는 말을 남기고 나와 누이 손을 놓고는 버스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망연자실, 그저 한참을 뽀얀 먼지 속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머니의 체온이 아직 남아있는데 버스는 저만치서 아물거렸다. 비로소 터지는 울음.

먼지 덮인 얼굴 위로 눈물길을 내며 누이와 집까지 걸어왔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울면서 걷다가 길가 풀섶에 피어있는 꽃이 예쁘면 잠시 바라보기도 하고 다람쥐 뛰는 기척에 문득 귀를 세우기도 하고- 이별에 대한 지속적인 슬픔을 유지하기에도 어린 나이였다.

아버지는 지독한 술꾼이셨다. 알코올중독 증세는 광기를 불렀고 거친 폭력으로 나타났다. 광산을 경영하는 등 사업을 하다가 주저앉은 후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나날이 심해갔고 어머니를 비롯한 네 식구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던진 칼이 바로 그의 얼굴 옆을 스쳐 벽에 꽂히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서울 친정식구들에게 도움을 청해 외삼촌이 내려오기라도 하면 술에 취하지 않은 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얼굴이었다. 외가 식구들은 ‘그까짓 부부싸움’에 오라가라한 어머니의 경망스러움을 탓하며 서울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버스를 타고 떠난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아버지 수발을 들어줄 누이와 아들인 소년 신병하를 남겨두고 어린 동생만 업고 서울로 간 것이다.

어머니의 가출로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안 외가 식구들이 양구로 내려와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누이와 그를 다시 서울로 데려왔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서 곧 중풍으로 쓰러져 10년 동안을 자리보전으로 지낸 뒤 세상을 떴다.

가난과 공포감이 자리했던 유년시절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신병하씨는 자신이 밝은 음악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비트가 강하고 힘이 넘치는 음악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용하게 흐르는 현을 기조로 알 수 없는 우울이 서정성을 띠며 신병하 특유의 음색을 만들어내고는 한다.


영화음악을 만드는 작업은 편집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촬영이 다 끝나고 편집에 들어가면 신병하씨는 감독과 함께 필름을 보면서 음악이 들어가야 할 부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부문에는 사랑의 감정이 흐르면 좋겠다. 여기에는 비장함이 강조되면 좋겠다는 식으로 감독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의 ‘감’을 표현하면 그것은 신병하씨가 직접 보는 영상과 함께 악상의 토대가 된다.


“영화음악을 잘 쓴다는 것은 이렇게 이해되어야 할 겁니다. 어느 한 장면에 두드러지게 삽입곡을 넣어 그 장면의 분위기만 반짝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영화에 줄곧 흐르는 톤이 있어야 합니다. 영상과 음악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영화 전체를 관통해야만 합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나라 감독 가운데 음악을 잘 쓰는 이로 임권택 감독을 꼽는다. 임감독과는 개인적으로도 ‘정서’가 맞아 일하기 편한 점도 있다. 간섭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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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하씨는 여태까지 100편 정도의 영화에 음악을 맡아왔다. 영화음악을 맡아할 인력이 없고 고(故)정민섭씨 정도가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던 80년대에는 한꺼번에 열편을 동시 진행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음악으로 <씨받이>를 꼽는다. 명창 안숙선의 창으로 애끓는 사모의 정을 절절이 토해내던 가락을 기억할 것이다.

<씨받이>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음악상이 유력하다는 설이 현지에서 전해졌다. 우리 영화로는 아직 한번도 해외영화제에서 음악상을 받은 적이 없다. 내심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씨받이> 음악이 미국 영화 <언터처블>하고 흡사하다는 겁니다. 기자회견 때도 임권택 감독에게 거기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퍼부어졌답니다.”


억울하고 화가 치미는 일이었다. 당시 <언터처블>은 국내 상영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신병하씨도 전혀 보지 못했던 영화였다. 후에 수입되어 개봉 되었을 때 일부러 찾아가 보았지만, 어디 한군데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우리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의 음악을 맡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그 오해는 앙금으로 남아있다.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신병하씨는 다 덮어두고 잠에 빠진다. 잠에서 깨어나면 산책을 나간다.


“왜 영화 속에서 보면 작곡가들이 조용한 오솔길이라도 걸으면서 명상하듯 악상을 떠올리죠? 난 그렇지 않아요. 거리를 다니다 지나가는 개 한 마리의 움직임에서 또 쓰레기 싣고 가는 차를 보면서 예기치 않았던 악상이 떠오르죠.”


그래서 그의 호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메모지와 연필이 들어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음 찾기에 자신을 투자하고 있는 영화음악가 신병하씨는 이제야 분당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다. 다음 작품 <아담이 눈뜰 때>에는 어떤 음악을 쓸까- 분당으로 내려가는 차안에서 그는 여전히 무엇인가 떠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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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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