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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80,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필자가 1993년에 인터뷰해 쓴 것입니다. 그 여섯 번째로 영화 편집을 예술로 승화시켜온 김현 편집기사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요즘 개봉되고 있는 우리영화의 처음 혹은 마지막에 떠오르는 크레딧 타이틀을 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름 하나가 있다.

편집 김현.

일반적으로 영화를 감독과 배우의 예술로서만 이해하는 이들에게 영화 편집의 몫은 좀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편집에 따라 영화는 달라진다. 단순히 필름을 잘라 잇는 기능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것이 바로 편집과정이다.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화편집인 김현씨는 영화계에 들어와 20여년 동안을 전문편집인으로 지내오며 편집을 영화 예술로 승화시켜왔다.

편집이란 그저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필름을 자르고 있는 ‘기능인’ 대접에서부터, 감독과 상의하고 때로는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전문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직접 겪어오고 있는 터다.

만으로 마흔다섯, 유난히 일찍 세어버린 머리카락만큼이나 ‘영화판’에 들어온 때가 어느새 까마득하다.

흔히, 편집은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난 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김현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편집을 의뢰받으면 대본부터 찬찬히 본다. 물론 대본대로만 영화가 찍혀지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그것을 그린다. 감독이 콘티를 짜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편집콘티를 짜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시나리오만 보고도 감독이 찍은 것을 상상하고 장면과 장면 사이를 어떻게 잇고 뛰어넘을 것인가. 병풍처럼 상상 속의 그림들을 접었다 펴곤 한다.


“영화편집은 타고난 재능과 기능이 합쳐졌을 때 온전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에요. 상상력, 감각 등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해서 오랜 경험으로 숙달된는 편집기술을 갖춰야 합니다.”


편집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은 또 있다. 편집실을 갖고 편집기계 등을 들이는데 드는 설비 투자가 만만치 않다. 김현씨도 10년 넘게 애오라지 편집 장비들에 돈을 들인 결과 지금 같은 개인편집실을 갖게 되었다. 연전에 동시녹음 편집기까지 갖춘 연후에야 비로소 내 집 마련의 궁리가 섰다.

편집을 해보겠다고 온 젊은이들이 그 밑에서 감각과 기술을 익히고는 영화 대신 방송을 택하는 까닭도, 다른 영화 일과 달리 설비 투자가 힘겨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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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태어난 김현씨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설치된 광목천 영사막 위에서 출렁이던 영상을 보며 영화에의 꿈을 키웠다. 집안 형편으로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꿈을 좇아 상경했다. 영화감독이 되고자 한 것이다.

당시 한국영화계를 호령하던 신필름을 찾아가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영화 일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편집 조수였다.

말이 편집 조수이자 실은 신필름 소속 노무자였다. 필름 나르는 것부터 소품 챙기는 것까지 궂은 일을 다 해내야 했다.

그때 ‘장호형’이 고마웠다. 이장호 감독은 김현씨보다 1년 일찍 신필름에 입사해서 조감독으로 뛰고 있었다. 제2조감독을 할 때는 김현씨를 함께 데리고 다니며 현장 경험을 시켜 주기도 했다.

신필름의 주인인 신상옥 감독은 절대군주였다. 편집할 때도 하나하나 간섭해서 편집기사는 단순히 필름 붙이는 기능공에 지나지 않았다.

한번은 김현씨 나름으로 영화를 편집해서 신 감독에게 보여주었다. 쓱 한번 보고 “열심히 했군”이 반응의 전부였다.

72년부터 79년까지 신필름에 있으면서 그 왕국의 몰락까지를 다 지켜본 그였다. <장미와 들개> 예고편에 잘린 장면을 집어넣었다 해서 영화사 등록을 최소당할 때까지, 신감독이 홍콩으로 무대를 옮기려 했을 때 함께 가지는 제의를 할 때도 김현씨는 거기 있었다.

신 감독의 납북으로 끊어진 것 같았던 인연은 북한에서 탈출한 신 감독이 <마유미>를 만들면서 다시 이어졌다. 그 편집을 김현씨에게 맡기려 한 것이다. 신 감독은 북한 체류중에도 김현씨가 편집한 우리 영화들을 꾸준히 봐왔다.

하지만 김현씨는 극구 싫다고 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필름을 가져다 놓는 거예요. 그래서 신 감독님에게 조건을 내밀었죠.”


옛날 신필름 시절처럼 일일이 간섭하면 안하겠다. 포인트만 지적해주면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 그의 조건이었다.

신 감독은 그러마 하고 자기 의견을 말한 다음 김현씨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그 일로 인해 김현씨는 신 감독, 신필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된 것이다.

김현씨는 신필름 시절 숱한 영화들을 편집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하나도 꼽지 않는다. 어떤 창의력도 요구되지 않는, 신 감독의 지시에 따라 필름을 자르고 잇는 단순 기능공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다.

<마유미>로 다시 신 감독과 일을 했을 때 비로소 김현씨는 떳떳한 전문편집인 대우를 받았고 과거의 설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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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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