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작가로 명망있는 김은국씨의 소설 ‘순교자’는 유현목 감독의 야심에 가득찬 열의로 영화화 됐다. 여인극장의 대표이자 여류연출가인 강유정씨가 기획을 맡았으며 유현목프로덕션을 탄생시키기 위한 시금석이었다. 김진규 남궁원 장동휘 윤일봉 박수정 등 쟁쟁한 멤버들이 출연했고, 당시로서는 꽤나 돈을 많이 들여 마포 형무소 자리에 폭격당한 상당히 큰 교회당 건물을 짓고 촬영을 했다. 촬영시기는 5월 초순경쯤으로 기억되는데 공교롭게도 극중의 때는 북풍이 몰아치는 영하의 추운 겨울이었다. 배우들은 거의 군복을 착용했는데 겨울장면이니 야전 점퍼에 장갑까지 끼어야만 했다. 교회당 안에서 촬영할 때는 그럭저럭 다들 잘 견딜 수 있었다.

“자, 밖으로 카메라 옮겨!”

유현목 감독은 뷰 파인더를 들고 교회당 안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촬영 포지션을 찾기 위해 뷰 파인더를 들여다보더니 “이거 어떻게 한다?” 하고 중얼거렸다.

“왜 그러시죠?” 조감독이 묻자 “저-기 저 동네가 카메라에 잡히는데 저 집들 지붕위에 눈가루라도 뿌려야겠는데...”

유현목 감독의 “해야겠는데...” 는 곧 “하라!”의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당시 유현목 문하에는 김사겸 감독 이상수 이재춘 황우루 그리고 필자 등이 있었는데, 교회당 너머로 보이는 마포동 일대의 집 지붕위에 횟가루를 뿌려야 할 사람은 말석인 황우루와 필자, 그리고 제작부장인 태기호뿐이었다.

세 사람은 가까운 건축자재점에서 횟가루 10포대를 배달해 주도록 한 뒤 카메라에 잡히는 동네로 갔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주인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지붕에 횟가루를 뿌려야 겠다고 했더니 부인네들은 기절초풍을 하는 게 아닌가. 화사한 5월에 횟가루라니, 바람 한번 불면 집안 꼴이 뭐가 되겠나... 우리는 온갖 감언이설로, 특히 한국영화를 사랑하시고 지원하여 주시는 뜻, 운운하면서 마침내 그 집들 지붕위에 횟가루를 다 뿌렸다.

세 사람의 몰골은 해골 뼈다귀에 회칠한 옷을 입고 물에 빠졌다 나온 생쥐였다. 그래도 의기양양하여 오픈세트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벌써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횟가루를 뿌려봤자 눈이 온 효과가 제대로 안 나기 때문에 카메라 포지션을 바꾸어 가기로 했다는 게 아닌가.

아...! 말단의 비애여. 황우루는 바로 얼마 뒤 작가 작곡가로 변신해 버렸고, 얼마전에 타계했다. 키다리 미스터김이라고 곧잘 놀리더니...



유현목 / 영화감독
출생 1925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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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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