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기부터 80년대 말까지. 전국의 영화 흥행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호남지역의 최강자로 ‘이월금’ 여사장이 있었다.


 서울변방, 부산경남, 대구경북, 호남(전남, 전북),충청, 경기 강원 등 6개 지역으로 나뉜 전국 흥행판도에서 호남지역의 시장성은 대단히 높았고 어떤 지역보다 영화 관객이 많기도 했다. 연간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200편을 넘던 영화전성기(?), 모든 영화의 제작자금이 위의 6개 지역 판매가(입도선매)에 의해 충당되었던 시절이다.


수많은 군소 영화제작자, 중간 브로커, 또는 브로커의 브로커 까지, 6대 흥행사의 동정에 일희일비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그 억센 남성들의 시장 한 복판인 호남에는  ‘이월금 여사’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 여사는 보통사람보다 키가 크고 거구였다. 모택동을 연상케 하는 용모에 가끔은 인자한 눈길을 천정에 두고 콧노래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여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한 카리스마가 있고, 파란만장한 풍상을 겪어온 여장부의 풍모라고나 할까? 그녀의 광주사무실 한가운데 만주에서 찍었다던 말 탄 이월금의 커다란 흑백사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이월금이 서울에 입성 할 때면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비서를 거느리곤 했다. 충무로의 ‘신성여관’ 이란 데가 이월금 여사의 변하지 않는 아지트였다. 크고 작은 거래처를 만나고, 수없이 찾아오는 신작 제작자들이 알현을 청한다. 비서의 위세가 보통이 아니다.


“아그야, 박 뭐시기 만든다는 책(시나리오)이 뭣이 당가?”
“이러 이러한 줄거리입니다.”
“배우는 어떤 아그들이여?”
“여자 배우는 000이고, 이러이러해서 아주 좋은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천정을 향해 눈을 지그시 감고, 부처님처럼 앉아 있던 그녀가 한마디 한다.


“...돈 되기 틀렸다”


이월금 여사는 글을 읽지 못한다. 숫자도 볼 줄 모르면서 기억력으로만 그 큰 사업을 해 나갔던 것이다. 여사의 큼직한 핸드백에는 작지 않은 종이 두루마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날마다 결재되어야 하는 수표나 어음들의 총 장부다. 충복 비서에게 그것을 내민다.


“아그야, 000이가 가져간 어음 날자가 며칠이냐?”
“0월 0일입니다. 그건 꼭 결제 하셔야 합니다.”
“시끄럽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놈이니 석 달 연장해라!”
“........”


비서가 어음장을 다시 쓰고 두루마리에 기장을 끝내면 여사가 그림을 그리듯이 힘든 글씨로 서명을 한다.

李 月 今.


세상에 그녀가 알고 있는 단 3 글자로 자서를 하고, 멋진 상아 도장을 꺼내 찍는다. 이월금 여사는 벌써 세상을 떠났다. 그 많은 재산을 같이 살던 양녀에게 넘기고 갔단다. 젊은 시절 그를 알고, 이 나이가 되기까지 ‘영화 프로듀서’ 란 직업을 살면서도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책 속에 있다’는 말이 영화현장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랬다. 내가 만난 사람가운데 영화의 흥행 여부를 가장 잘 예측하는 사람. 그는 바로 글 한줄 읽지 못하는 여자, 이월금 여사였다.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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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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