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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영화는 공짜로 실컷 보겠네요?” 처음 만난 사람이 내 직업을 알고 나면 으레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곤 여지없이 탄성이 이어진다. “정말 부러운 직업이에요.” 물론 공짜로 영화를 본다. 이 일을 하면서 돈 내고 영화 봤다간 아마 일 년도 못 가 파산할 것이다. 더구나 누구보다 먼저 본다. 일단 영화가 완성되거나 수입되고 나면 홍보기획자가 제일 먼저 영화를 본다. 마케팅에 필요한 방향과 자료 따위를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신나는 직업이다. 그러나 직업으로 보는 영화가 마냥 즐거운 일일 수만은 없다. 너무 재미있어 그냥 두어도 흥행에 성공할 영화. 이런 영화는 몇 번을 보아도 즐겁다. 아니, 몇 번씩 볼 필요도 없다. 한 번만 보고도 일이 술술 풀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영화는 일 년에 한두 편 만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영화는 홍보기획자를 골치 아프게 만든다.



내가 봐도 몸이 뒤틀리고 잠이 솔솔 오는 영화. 이런 영화를 가지고 관객을 유혹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영화일수록 또 여러 번 보게 된다. 한두 번으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남들은 재미있자고 보는 영화를 일이기 때문에 고역을 치러가며 봐야 한다. 내 돈 내고 봐도 좋으니 제발 보통 관객처럼 마음 편하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일반 관객이 정말 부럽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을 본 어떤 관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희생>을 보로 갔다가 두 시간 넘게 ‘희생’만 당하고 나왔어요” 이어지는 말이 더 걸작이었다. “칸느에서 상을 엄청나게 받았다고 하길래 속아서 갔지 뭐예요!”



속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희생>은 분명히 1989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장작이다. 단, 일반 대중이 즐기기에는 지극히 난해한 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홍보기획자가 얼마나 고민했겠는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두 시간 남짓 희생당하고 나온 그 관객은 오히려 행복할지 모른다. 그 수십 배가 넘는 시간을 희생당했을 홍보기획자는 과연 어땠을까?



어쨌든 <희생>은 성공했다. 그렇게 어려운 영화를 보러 가게끔 일반 대중을 유혹했으니까. 그 홍보기획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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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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