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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 닫혀있던 시대에 [고래사냥]이란 영화를 제작하고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일은 내 영화인생에서 다시없는 행운이었다. ‘최인호’라는 시대의 걸출한 작가, 신예감독 ‘배창호’, 거기에 안성기, 이미숙, 김수철 같이 빼어난 연기자 들이 있었기에  한 시대를 대표할 영화가 세상에 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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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기자를 통해서 완성되는 작업임으로 성공적인 ‘캐스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래사냥]도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에서 주연 중 하나인 ‘병태’역의 배우를 결정하는 일만 남아있었다. 배창호(감독), 최인호(작가), 안성기(상대역), 정광석(촬영), 황기성(제작)은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하든 밝고, 깨끗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병태’를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스탭 회의를 거쳐 모아진 마지막 의견은 개그맨이던 ‘이원숭’ 이었다. 이젠 제작자가 결정을 해야 할 차례다. 어쩔까. 나는 며칠을 더듬거렸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찾아보자.”

계약된 스텝들이 2개월 쯤 지나도 캐스팅이 완료되지 않자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래사냥]은 거지왕초 민우(안성기)나 창녀 춘자(이미숙)보다도 ‘병태’가 끌고 나가야 하는 영화였다. 그가 누구냐에 따라 이 영화의 성공은 큰 차이가 날 것이니 ‘병태’를 찾는데 더 노력하자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잡지 ‘주부생활’의 김 모 여기자를 한 다방에서 만났다.


“고래사냥, 잘 되세요? 기자들의 관심도 많은데 잘 됐으면 좋겠네요.”

“김기자! 그 원작소설은 읽었지? 병태 역에 추천할 신인이 없을까?”

“병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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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밖에도 김 기자는 짚이는 게 있어 보였다. ‘집안 구석에서 통기타 만 치고 뒹굴다가 부모한테 쫓겨나고 요즘은 친구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키 작은 남자애’ 가 있는데 적역 같다고 했다. 일은 즉석에서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얼마 후, 다방 문을 열며 들어서는 ‘키 작은 순백의 청년, 바로 그는 내가 찾던 ‘병태’였다. 그러는 사이 배창호와 최인호도 달려 들어왔다. 두 사람이 소리쳤다.


“야아! 이름이 뭐야?!”

“네. 김.수.철 입니다.”


[고래사냥]이 김수철을 만난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었다. 작고, 구부정하고, 때 묻지 않은 맑은 청년. 김수철은 생긴 그대로가 ‘병태’였을 뿐 아니라 그의 숨겨진 천부적 음악성 까지도 최인호와 배창호의 안테나에 즉각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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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김수철은 [고래사냥]의 음악감독까지 맡게 되는 행운을 잡았다. 그리고 영화음악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나도야간다','별리'같은 삽입곡을 만들었다. 운명의 신도 [고래사냥]과 김수철을 도왔다. 세상을 떠난 단짝 친구를 그리며 만들었다는 노래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라디오에서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기 시작할 때 처음 만났던 그는,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이미 정상급 인기가수로 변해 있었다.  마침내, 영화 [고래사냥]은 개봉되어 전국 극장에서 연일 매진행렬이 이어졌고 김수철은 [고래사냥]을 만나서 활짝 핀 아주 행복한 대중음악가가 되었다. 23년이 지난, 오늘 김수철은 ‘한국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접목시킨 큰 음악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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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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