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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20일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 서울인구가 2백만 명일 때 퇴계로 4가에서 동양제일의 시설을 자랑하며 완공된 ‘대한극장’이 미국영화 <잊지 못할 사랑>(An affair to Remember)으로 첫 상영을 시작한 날이다. 지난해 6월 7일이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극장 단성사가 공연을 처음으로 시작한 지 1백주년이었는데, 8·15해방과 6·25전쟁을 겪은 후 극장문화의 획기적 전환기를 가져다 준 대한극장의 탄생 또한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더구나 2천석이 넘는 매머드 좌석(이후 앞쪽 좌석의 관람이 크게 불편하다 하여 좌석 수는 줄어든다)은 대한극장의 위용뿐만 아니라 영화의 메카 충무로를 업그레이드시키며 한층 수준 높아진 관객의 안식처가 되었다. 전통의 국도극장과 수도극장(후에 스카라)을 구심점으로 중앙극장, 명보극장과 함께 궁핍한 시대의 유일한 대중명소였던 대한극장은 서민의 우상이었다.



대한극장이 최초로 한국영화를 상영 한 것은 1958년 추석 때 꼬마스타 안성기가 나오는 <눈물>이었으며 68년에는 신성일과 홍세미가 나온 <춘향>을 상영하여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쾌거를 올렸다. 또한 1960년 국내 최초로 70미리 시설을 도입, 대형화면 시대를 열면서 <남태평양>을 비롯하여 <캉캉> <왕중왕> <클레오파트라>는 물론 <닥터지바고>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60년대 관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명화의 오아시스로 군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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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대한극장’을 이야기할 때는 1962년 2월 1일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날이 바로 <벤허>를 개봉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장장 7개월에 걸쳐 당시 서울 인구 2백5십만 명의 1/3에 해당하는 70만 명이 관람한 <벤허>의 흥행은 파천황()적 기록이 되어 일명 ‘벤허극장’으로 전국에서 칭송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벤허>가 상영되던 62년 6월 10일 화폐개혁이 단행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영화의 흥행신화는 끊이지 않았다. <벤허>는 대한극장에서 10년 단위로 네 차례나 리바이벌 상영하였으며 지금도 종로2가 허리우드극장(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50년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극장은 모기업 세기상사가 제작한 <메밀꽃 필 무렵> <귀로> <별아 내 가슴에>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영화 <홍길동>을 상영하여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수식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극장은 1956년 미국 20세기 폭스사가 설계와 감독을 하고 기자재까지 협조하여 만들어진, 창문이 없는 ‘무창(無窓)건물’ 제1호였다.



명보극장만이 명맥을 잇고 있는 충무로 일대에 대한극장은 극장문화의 새로운 물결을 타고 2002년 복합극장으로 새롭게 건축하여 명실상부한 문화전당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반백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극장이 급변하는 시대와 함께 앞으로 50년 후인 2058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100주년을 맞이할 지, 가는 세월에 물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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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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