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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서울 길상사 정기법회(1천여 명의 신도가 운집한 자리)에서 하셨다는 ‘대운하 반대’ 말씀은 스님께서 의도하셨던 것 이상으로 강력한 파고를 일으켰고 중생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았기에 몇 가지 후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운하 논쟁’에 지금 스님이 나서야 할 시점이 아니라는 생각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전후해서 제기된 ‘한반도 대운하’ 문제는 분명한 정치이슈로 지금 막 찬반논쟁을 거치는 과정에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도 지대하며 전문 비전문인 간에 치열한 격론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하고 책임 있는 지식인의 자세는, 벌어진 이 논쟁이 보다 냉철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논전으로 격상되도록 인내와 협력을 보태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한 토론을 거쳐 다수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정치문제’에 종교인이 성급하게 가담하여 종교적 시각으로 문제를 예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로, 자칫 또 하나의 잘못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운하 계획은 국토에 대한 모독이고 무례”라는 견해에 대하여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부단하게 개조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존중되어야 하고 장려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주어진 ‘대한민국 국토’를 보다 유용하게 개조해 보고자 하는 정치인이나 집단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그 의도가 불순하지 않는 한 폄하되거나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흐르는 ‘한강’이나 ‘낙동강’을 이어서 하나의 운하를 만들어 보겠다는 어느 정치인이나 집단의 집념 자체가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고 정치행위자에 대한 무례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관광 사업에 있어서 운하건설보다 기존의 관광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존의 관광자원도 제대로 활용 못하면서 운하건설의 이유로 관광을 내 세우는 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견해에 대하여  

이 말씀에 대한 중생의 유감은, 스님께서 운하에 대한 거부감이 앞서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관광산업의 문제점이 보이지 않거나 평소 관광산업에 관심이 없지 않으셨나 하는 점입니다. 스님께서도 세계를 많이 다니셨겠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을 연중 우리나라로 대거 불러들일 만한 내로라하는 무슨 관광자원이 있습니까? 관광자원이라면, 자연이 준 ‘자연유산’과 그 나라 역사가 만든 ‘문화유산’이지요. 멀리 볼 것 없이, 바로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만이라도 우리와 비교해 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세계 사람들은 누구나 <보고, 누릴 것>을 찾아서 이동하고 돈을 씁니다. 한국의 연간 관광적자가 13조 원이란 숫자는 만들어 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정직한 것은 시장이고 민심입니다. 세계는 날로 부유해지고 그 가운데 보여줄 만한 상품(관광자원)이 아주 적은 나라 우리의 ‘관광산업적자’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스님은 얼마나 고민해 보셨습니까.

운하와 관광을 묶어 말하는 사람들이 ‘속임수’라기보다는, 자국민은 날마다 밖으로 나가려 하고 구경 오는 외국 사람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관광 빈국’에 살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는 스님 같은 지식인들이 혹시 국민을 속이고 있지는 않는지요. 세계는 날로 부유해지고 관광산업경쟁은 총소리 없는 세계 대전이 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2억 명에 가까운데, 서울시장 ‘오세훈’은 연간 6백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임기 내 1200만으로 올려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운하건설로 관광을 내세우는 것이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하시기 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운하건설로 이익을 얻는 일부건설 업자와 땅 투기꾼들만 운하건설에 찬성할 뿐 양심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는  

이 말씀은, 너무 스님께서 치우치신 말씀 같습니다. 과반에 가깝던 지지율이 운하건설 주창자의 정치적 인기에 따라 오르내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 개인적 이해 없이 개발을 지지하거나 결정을 미루고 침묵하는 국민까지도 마치 역사의 방관자인양 치부하려는 (만약 우리가 이를 지켜보기만 한다면 이명박 정부 사람들과 함께 범죄자로 전락하게 될 것) 말씀에는 동의하기 어렵고,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운하 저지는 우리에게 직면한 중대 사안,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말씀이 정말 스님 말씀입니까?  

<무소유> <서있는 사람들> <산방한담> 같은 명저를 중생에게 보여주며 맑고 향기 넘친 삶을 살아오신 스님께서, 아직 진행되고 있을 뿐인, 완결되지도 않은, 정치적 사안에 이토록 성급하고 선동적(?)인 표정을 보여주신 것에 몹시 당황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주에 나와서 지구를 보니 한국은 하나였다>라고 한 ‘이소연’ 양의 메시지가 스님의 말씀보다도 더 커 보인다면 큰 결례가 되겠지요. 눈을 감고 싶을 만큼 갈래갈래 찢어진 이 나라 중생들을 하나로 아울러 주시려는 스님의 사랑이 어느 때 보다 아쉬운 시대입니다.

다만 이 중생은, 아직까지 ‘대운하 건설’에 대하여 ‘찬’ ‘반’의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더 많은 견해를 경청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국민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혀 드립니다.


외람된 소견에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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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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