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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김동리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무녀도>의 배역을 놓고 당대 최고 여배우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져 한 여름의 충무로가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적이 있었다. 그해 태창영화사에서는 유현목 감독의 <분례기>를 끝내고 다시금 그에게 연출을 맡겨 김지미를 주인공으로 하는 <무녀도> 제작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태창영화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70mm대작 <춘향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던 터라 <무녀도>의 제작은 잠시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그런 가운데 열린 1971년 제1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분례기>는 감독상(유현목)과 여우주연상(윤정희) 등 5개 부문에 걸쳐 수상을 한다. 하지만 제작사였던 태창영화사 김태수 사장이 내심 기대했던 작품상 부문에서는 ‘내용이 어둡다’는 이유로 “해당 없음”으로 끝나고 만다. 심기일전한 태창영화사 김태수 사장은 다시금 대종상에 도전하기 위하여 당시 <독짓는 늙은이>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최하원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기고 최고의 인기스타 윤정희를 기용해 <무녀도>의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당초 <무녀도>의 주인공으로 낙점되었었던 김지미 측에서 ‘자신은 스케줄 관계로 <무녀도> 참여를 지연한 적이 없으며 배역교체의 원인을 제공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영화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낸 것이다. 김지미 측은 이에 그치지 않고 윤정희를 배우협회에서 제명시켜 달라는 진정서까지 제출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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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녀도>가 어떤 영화이며 주인공 ‘모화(毛火)’역이 무엇이기에 법정으로 비화되는 분쟁까지 겪었을까. <무녀도>의 모화는 ‘무당’이다. <무녀도>의 주인공이 된 윤정희는 공교롭게도 8년 후 임권택 감독의 <신궁(神弓)>에서 ‘왕년이’로 또 한 번 무당 역을 해낸다. <신궁>속 그녀는 장선포(지명)무당 ‘어린년이’가 죽자 그의 아들 ‘옥수’와 결혼하여 무당의 대를 잇는다. 하지만 선주이자 고리대금 업자였던 ‘판수’는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남편 ‘옥수’를 늘 괴롭힌다. 결국 풍어로 축제굿이 한창 신명나게 벌어진 날 가보로 내려오던 신궁(활)으로 ‘판수’를 향하여 활을 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그를 향해 싸늘히 미소 짓던 무당 윤정희. 그녀의 무당 역은 단연 일품이었다.



<무녀도>에서의 한(恨)을 풀기 위함이었을까. 같은 해(1979년) 김지미 역시 김동리의 개작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변장호 감독의 <을화(乙火)>에서 무당 ‘을화’역을 맡는다. 영화에서 그녀는 어느 날 ‘강신무(신들린 무당·내린 무당이라고도 함)’가 되어 굿당에서 돌아오던 날 ‘성방돌(백일섭)’과 눈이 맞아 결혼을 하고 전처가 낳은 아들 ‘영술’을 ‘기림사’로 보낸다. 이후 세월이 흘러 마을에는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 신자가 하나둘 늘어난다. 그리고 아홉 살 때 ‘기림사’로 떠났던 ‘영술’마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돌아온다. 무당 ‘을화’는 아들 ‘영술’의 성경책을 태우면서 굿을 벌이다가 들고 있던 식칼로 아들을 죽이고 흘러가는 강으로 목숨을 던진다.



<무녀도>의 배역을 놓쳤던 김지미는 <을화>에서 백일섭, 유장현, 이순재, 이대엽, 정애란 등과 함께 출연하여 무당 역을 열연하였고 윤정희 또한 <신궁>에서 김희라, 방희, 홍성민, 김만, 김정란 등 조연진들 덕택으로 전력투구의 무당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서편제>의 정일성 촬영감독이 크랭크(카메라 핸들)를 잡았는데 누가 더 연기를 잘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반반이었다고 애써 말하였다.



아시아의 별 김지미와 트로이카 여배우 윤정희. 여하튼 <무녀도>의 배역 파문 이후 선후배로서 우정 어린 화해를 하고 각자의 연기세계를 달려온 두 톱스타가 79년 ‘무당’역으로 나란히 스크린을 수놓았음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었고 우연치고는 묘한 인연이었다. <을화>와 <신궁>은 토속적인 우리 영화의 연기세계에서 ‘무당’이 여배우의 열연을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배역임을 증명해낸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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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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