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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8년 5월 31일, 지금은 도시계획으로 없어져 동화면세점이 자리 잡고 있던 광화문 네거리 국제극장에서 홍성기 감독의 <별아 내가슴에>가 상영되어 최고의 흥행작으로 극장가를 강타하였다. <순애보>의 인기작가 박계주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홍성기 감독과 김지미 콤비를 탄생시킨 기폭제가 되어, 이들은 1961년 <춘향전>까지 영화계를 석권하며 인기의 대명사로 군림하였다.



북한에서 단신 남하하여 여자대학에 재학 중인 미혜(김지미)는 아버지의 친구 현암교수의 각별한 사랑 속에 젊음을 구가하고 있었다. 어느 날 현암 교수의 서재에서 출판사 원고를 찾으러 온 청년 윤성일(이민)을 만난 것이 미혜의 일생을 결정지을 계기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현암교수가 20여 년 전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 헌병에게 추적을 당하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초월이라는 여성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이런 숙명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 성일이었던 것이다. 현암교수의 시계 속에 감추어진 여자의 사진이 바로 성일의 어머니인 것을 안 미혜가 미친 듯이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는 현암의 병세가 악화되어 임종이 다가왔을 때였다. 20년 동안 그리웠던 옛 애인들은 마지막 정을 나누고 현암은 운명한다. 다음날 아침 소집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하는 서울역 플랫폼에서 성일을 배웅하러 나온 초월과 뺨에 미소를 띤 미혜의 축복 속에 작별인사를 한다.



50년 전 고교 1학년 재학시절 마포 경보극장의 어둠컴컴한 어둠의 천국에서(?) 두 번씩이나 이 영화를 보면서 김지미의 연기에 탐닉한 스크린의 내용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대강의 스토리가 반추된다. <별아 내가슴에>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뉴페이스 김지미가 <장미는 슬프다>와 <초설>(初雪)에 이어 네 번째로 출연한 영화이다. 김동진 음악의 담담한 선율 속에 혜성처럼 등장한 김지미의 신선한 매력으로 <별아 내가슴에>는 흥행의 개가를 올렸으며 홍감독과 김지미는 결혼에 골인하여 신문지상에 “별은 감독의 품안에”라는 기사로 장식하였다. 두 콤비는 <산넘어 바다건너>를 위시하여 <별은 창넘어로> <비극은 없다> <청춘극장>등 수많은 영화로 50년대 말을 수놓는 우리영화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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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 내가슴에>는 10년 후인 1968년에 리메이크되어 미혜로 나온 김지미가 초월로 등장하였으며 최고의 미남가수 남진이 성일로 나와 스크린 데뷔작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트로이카 여배우 문희가 미혜로 나왔으며 남진이 부른 영화주제가 ‘별아 내가슴에’는 지금도 가요무대에서 애창되어 당시를 회상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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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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