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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에서 뜻 있는 몇몇 분들이 지금도 나운규의 <아리랑>(1923) 필름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 영화의 원전이랄 수 있는 <아리랑>은 일제 암흑기 때 만들어져 원본이 유실된 채 한 세기가 흐르도록 한국영화의 상징으로 아로 새겨져 있다. 사실 우리는 나운규 감독이 연출한 수십 편의 영화 중 단 한 편의 필름도 간직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 속에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 해방직후에 만들어진 이구영 감독의 <안중근 사기>(1946)는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조차 몇 장의 스틸과 시놉시스 혹은 시나리오를 통해 그 작품을 유추해볼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최초의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로 영화의 효시를 이룩한 뤼미에르 형제의 첫 번째 영화 <기차의 도착> <공장 직공의 퇴근>(1892) 필름은 원본 그대로 보존되어 시네마테크(Cinematheque)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피스 감독이 최초로 12권으로 제작한 <국가의 탄생>(1914)도 가끔 고전영화 감상 코너를 통해 TV에서 방영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저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유실된 한국영화에서 몇몇 보고 싶은 영화(혹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든다면 단연 <만추>가 첫 번째다. 영화 <만추>는 1966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그해 12월 명보극장에서 상영했다. 또 전국의 극장가에서도 호황이었다. 특히 한국영화를 멀리하던 외국영화 관객까지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당시 이 영화를 본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이런 말로 이 영화를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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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는 잉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이 있지만 우리나라엔 이만희 감독이 있다.”



<만추>는 6만 2천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흥행을 하고 각종 영화제에서도 수상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일들이 이 영화의 원본을 유실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 즉 외국 영화제와 해외 배급으로 인한 유출 때문이었는데, 이 영화 원본의 해외유출 과정은 여러 경로로 나눠진다. 홍콩의 극장가로 이 영화가 수출되었고 또 미국의 수출업자가 이 영화를 미국에 배급했다. 이 영화의 제작자 호현찬 씨는 그 미국인 업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최근 직접 통화까지 했으나 필름의 존재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만추>는 또한 제17회 베를린영화제(1967)에 출품되었다. 그런데 당시 필름 수송은 선박 편을 이용해야 하는 관계로 결국 출품 기일이 넘어서 필름이 현지에 도착해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특별 상영 필름으로 공개되었고 또한 프랑크푸르트 영화주간에 일반인에게 상영되어 독일의 각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다음은 스페인영화제에 출품한 경우이다. 대형 사고는 이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보통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는 경우에는 그 영화의 프린트(원본이 아닌 복사본 필름)를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영어 자막이나 그 해당 국어로 번역하여 보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영문 시나리오와 함께 프린트를 보내게 된다. 그런 급한 영화제 일정과 프린트를 복사할 비용을 아끼느라 오리지널 네가 필름(Naga Film)을 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가 필름이 망실되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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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근 40여 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몇몇 지인들은 이 영화의 네가 필름 혹은 프린트라도 분명 이 지구상 어디엔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 필름을 찾을 방법은 3,4가지 방향으로 나뉘어 있는 당시의 누출 루트를 역으로 추적하는 것이다. 미국의 수입업자는 혹시 그 필름을 찾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피력했다고 한다. 또 베를린과 스페인의 당시 영화제 관계자에게 묻고 필름 보관소 혹은 보세창고를 뒤져본다면 혹시 이 영화의 필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혹자는 북한에 그 필름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광 김정일이 홍콩을 통해 프린트를 입수하여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건 확증이 없는 이야기다. 나는 언젠가 이 영화가 기적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그런 날이 언젠가 꼭 오기를 기대한다.




 

■ 유지형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금홍아 금홍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등 30여 편에 달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됴화> <사라는 유죄>등을 연출한 감독이다. 이만희, 김기영 감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연구실적과 자료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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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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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드리햅번 2008.05.31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의 구에서 개최하는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취지가
    우리나라 옛영화를 복원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찾아내어 보존하는데 앞장서는 영화제가 되었으면하는 바램입니다.

  2. fd 2008.05.31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설의 영화 만추... 보고 싶당

  3. 훗.. 2008.06.01 0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화제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데
    영화라고 관리를 잘 할거 같어?

  4. 당시 2008.06.12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영화를 프랑스에서 영화 관계자들로만..시사회를 가져 한국영화의 시..란 극찬을 받았어요
    문정숙씨의 우울한 표정연기,신성일의 위조지폐범의 급박한 연기,이후 여러번 리메이크된 작품을 다 봤지만 오리지널 이만희님의 만추는 따라가는 작품은 없었어요.
    늦은 가을만 되면 꼭 생각나는 최고의 작품이지요

  5. 추억의 관람객 2011.02.22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국교 2년생이던 시절 이 영화를 봤는데,,어린나이에도 감동이 남았지요.

    필름이 없어졌다니,,정말 안타깝네요..명작중의 명작인데...

  6. 이광호 2011.05.21 09: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대학 2학년때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한번 보고 그 감동을 받아 당시 보고 또보고 하여 한 5번은 보았던 생각이 나면 그 영화를 보고 문정숙 연기와 영화의 감동으로 잠을 못이루었던 기억이 납니다.

  7. 이명재 2011.06.28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만추를 꼭 되찾기 기원하겠습니다. 한국 영화의 황금시기에 영화라니 더욱기대가 되네요..얼마전 대괴수 용가리를 보면서 영어대사의 영화를 보니 참으로 서글프더군요. 고전 sf의 전설이 영어본 밖에 없다니..
    만추가 국민들앞에 나타나는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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