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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성의 인기소설 <청춘극장>은 암울한 피난시절에 우리의 심금을 울린 유토피아적 소설이었다. 시대의 격랑과 더불어 청춘의 꿈과 비전을 카오스의 배에 싣고 무진장한 소설의 유역을 넘나든 대중적 작품으로 길이 남아 있다.



청춘극장. 이 얼마나 거창한 낭만의 제목인가? 이 소설을 영화화하려고 1950년대 수많은 영화제작자가 기획을 시도하였으나 방대한 소설의 무대와 제작비로 인해 초기 단계에서 번번이 좌초되고 말았다. 그러던 차 홍성기 감독이 풍부한 연출력으로 <청춘극장>의 영화화에 착수, 오유경 역에 김지미(당시 부인), 허운옥 역에 황정순, 백영민 역에 김진규를 기용하여 전국의 극장가가 흥행의 물결로 넘쳐나는 개가를 올렸다.



<청춘극장>이 두 번째로 영화화된 것은 1966년이었다. 트로이카 스타로 각광을 받은 불세출의 스타 윤정희가 오유경으로 분하여 스크린 데뷔의 고고성을 울렸다. 또한 백영민 역에는 인기절정의 신성일이, 허운옥 역에는 고은아가 나왔고 이 영화의 성공과 함께 고은아는 제작자 곽정환과 결혼하는 인연이 되었다. <마부>와 <박서방>으로 유명한 강대진 감독은 당시 <청춘극장>의 히트로 <강명화> <가로수의 합창> <보은의 기적>등 1년에 7,8편의 멜로드라마를 감독하는 최고의 전성시대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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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청춘극장>이 제작된 것은 1975년이었다. “광복30주년 기념특작”이라는 캐치플레이를 걸고 <영자의 전성시대>의 기획자 황기성의 총지휘로 변장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때의 오유경 역에는 제2대 트로이카 여배우인 정윤희를 히로인으로 발탁하였다. 당시 그녀는 신필름에서 무명의 햇병아리로 이경태 감독의 <욕망>과 <동거인>에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백영민 역에는 제2의 신성일로 평가받던 신영일이 나왔고 허운옥 역에는 탤런트 김창숙이 열연하였다. 특기할 것은 신영일을 위해 신성일이 고뇌하는 지식인 일본선생으로 특별출연하였고, 식민지 청년 신영일에게 조국의 긍지를 품으라고 말하는 대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청춘극장>은 한마디로 한국영화 스타의 산실이 된 표본적인 케이스였다. 특히 김지미 윤정희 정윤희로 이어진 ‘오유경’역은 후에 오유경이라는 예명의 스타가 나오기도 했고, 김진규 신성일 신영일이 거쳐  ‘백영민’ 역시 김광수라는 배우가 예명을 백영민으로 바꾸는 개명이 있었다. 또한 황정순, 고은아, 김창숙이 열연한 ‘허윤옥’은 현모양처의 심벌로 구원의 여성상이 되었다. 1975년 이후로 <청춘극장>은 리메이크가 되지 않았지만 TV에서 두 차례 방영되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속도감은 더딘 그림엽서에 불과하여 스크린을 누볐던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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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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