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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위기론은 고개를 내릴 줄 모르고 2차 판권시장이 완전히 무너졌다고는 하나 문화를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어느 경로에서든 욕구충족이 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영화는 더욱 영화다워야 살아남는다.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어두컴컴한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영화만의 카드가 필요한 것이다. 장대한 화면구성과 심장을 울리는 사운드, 그리고 1분 1초가 아깝지 않은 함축성과 당대 이슈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메시지로 진한 여운을 주지 못하면 관객들이 가장 먼저 외면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70mm영화도 그런 목적에서 나왔다. 70년대 초반까지 의욕적으로 한국영화를 제작하던 태창영화사 김태수 사장이 70mm영화 <춘향전>을 기획, 작고한 명 촬영기사 장석준씨에게 크랭크를 맡겼다. 신성일 문희가 주연하고 이성구 감독의 연출로 한국 최초의 70mm 국산촬영장비에 의한 영화가 기대 속에 크랭크인 했다.



70mm영화 네거티브 필름은 당시 구하기도 힘들고 비용이 굉장했다. 게다가 국내에는 70mm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나 미국에 보내어 현상할 수밖에 없었고 70mm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도 없었다. 필름의 넓이는 35mm의 두 배 크기에 무게도 무거워 카메라의 회전이 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장석준 촬영기사는 자신의 집안에 현상탱크를 만들고 완벽한 70mm 카메라와 현상시설을 갖추기 위해 사재를 털어넣고 기계와 씨름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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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70mm 영화촬영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형화면의 영화는 대형화면에 어울리는 영상이 담겨야 제맛을 낼 수 있을 터. <춘향전>을 대형화면으로 촬영한다고 해도 등장인물의 클로즈업은 오히려 기괴스러울 것이요, 장쾌하거나 웅대한 내용을 담을 만한 소재가 약했던 것이다. 고작해야 암행어사 출두나 변사또의 잔치일텐데 그런 장면이 70mm 화면에서 얼마나 대형화면의 멋과 맛을 풍겨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한국적 소재를 장대한 화면에 담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자 했던 <춘향전>의 최초 시도는 지금에 이르러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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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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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춘향전도 2008.06.12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명하지만 당시 방자역의 허장강님의 연기가 일품이였죠.
    우리나라 영화사상 방자역을 두번 하신분은 허장강 선생님뿐이죠.
    신상옥님의 춘향전..여기에서 또 방자역을 하신 허선생님은
    어쩜 다시는 나오지 않을 독특한 연기 세계를 가진 분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