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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7월의 무더위 속에 정소영 감독, 문희와 신영균 주연의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이 국도극장에서 소리소문없이 상영됐다.


그러나 상영 10일이 지나면서 영화가 심금을 울린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을 듣고 고무신 관객들이 모여들어 극장은 만원사례를 이뤘다.


이 영화의 애초 타이틀은 <절창>(絶唱)이었으나 너무 피상적이며 희망감이 없다고 하여 당시로서는 금기시하는 설명조인 ‘미워도 다시한번’으로 바꿨으며 결과적으로 제목 덕도 봤다.


영화에는 처와 첩, 그리고 첩이 낳은 아이가 등장했다. 여기에 당시 시대상의 단면도를 대변하는 도시와 농촌의 여성이 대비됐다. 농촌 출신 여자가 서울에 올라와 유부남과 사귀고 아이까지 낳지만 본처에게 아이를 내준다는 영화 스토리는 보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현실을 카타르시스하는 청량제가 되었다.


주인공을 맡은 신영균은 이전에는 <연산군> 등 사극에서 보여준 강한 이미지를 벗고 멜로물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여기에 당대 트로이카 여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문희의 청순가련한 이미지가 더해져 공감을 얻었다. 본처 역을 맡은 전계현도 가식없는 연기를 했고 아역을 맡은 김정훈은 관객들로 하여금 연신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영화는 개봉 극장에서만 368,831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한 히트였다.


영화의 히트에 자극받은 지방흥행사의 열화 같은 지원으로 1969년 <속, 미워도 다시한번>이 전편과 같은 출연진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속편은 22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으며 남진이 부른 영화주제가는 라디오를 타고 전국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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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같은 제목으로 3편이 만들어져 설날에 개봉됐는데, 1,2편의 위력에 힘입어 20만명의 손님을 끌어 극장가의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시의 영화 광고 카피는 “빼앗긴 여심도 없고, 차지한 여심도 없는, 아! 미워도 미워도 다시한번!‘으로 다분히 신파조였으나 관객들 동원에는 효과적이었다.


이어 4편격인 <미워도 다시한번 ․대완결편>이 1971년에 만들어져 관객 16만명을 동원했다. 이 완결편에는 3편까지 출연했던 아역 김정훈 대신 노운영(노주현의 본명)이 출연했다. 요즈음 중후한 중년신사로 드라마 등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 노주현이다.


<미워도 다시한번>의 연속적인 흥행 성공은 한국영화 제작의 동력이 되어 1969년 229편, 1970년 231편, 1971년 202편 등 충무로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견인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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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미워도 다시한번> 시리즈는 1980년 변장호 감독에 의해 <미워도 다시한번 ․80>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윤일봉과 김영란, 김윤경, 아역으로 이재학이 출연한 이 완결편은 364.538명의 관객이 보러와 12년 전의 눈물을 이어갔다.


이어 1981년 <제2부․ 미워도 다시한번 80>으로 제목을 바꿔 윤일봉, 김영애와 조옥희를 출연시켰으나 흥행은 잘되지 않았다.


2002년에는 <미워도 다시한번 2002>의 원조 감독인 정소영 감독이 “세계인에 호소하는 순애와 희생의 시가(詩歌)”라는 1968년 포스터의 문안을 안고 신세대 스타인 이경영과 이승연, 박용하, 김나운 등을 출연시켜 새롭게 시도했지만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신화는 더 이상 스크린에서 탄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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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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