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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배우는 어떤 역이든지 다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논리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배우도 인간이고 인간은 유한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능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만능배우 또는 슈퍼스타라고 찬사를 받는 배우에게도 하기 어려운 패턴의 연기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정통연기를 하는 신영균씨에게 대표적 특성연기의 원로인 김희갑씨의 연기패턴을 요청한다면 영락없는 넌센스 코미디가 될 것이다.

반대로 김희갑씨에게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연산군>에서의 신영균씨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두 배우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확고한 자기 연기 영역을 구축한 대표적 배우였지만, 결코 상대의 영역을 넘볼 수도 넘볼 필요도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 두 분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힘을 합쳐 딱 한 번 영화를 제작했었다.

70년도의 추석프로로 서울의 국도극장과 부산의 부산극장에서 개봉된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가 바로 그것.

신영균 황정순씨가 주연을 했고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당시로서는 대작영화였다.

그때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영화사만이 제작을 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영화제작이 매우 힘든 상태였다.

가끔 대명제작이 있긴 했지만, 특별한 친분관계가 아니면 이루어지기 힘들었고 대명사실이 적발되면 협회에 벌금으로 2백만원을 납부토록 결의가 돼 있었다.

더욱이 70년도는 60년대의 호황기에서 관객이 다소 감소하는 하향세를 보여 영화기획의 방향설정에 애를 먹고 있을 때였다.

그런 때 두 배우가 영화제작에 손을 댔으니 기대와 호기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제작에 쏟아 넣은 열과 정성에 비해 얻은 것은 너무 적었다. 그해의 추석은 평년에 비해 조금 날씨가 쌀쌀했고(관객이 적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어서 흥행은 참패였다.

당시 필자는 이 영화의 제작 마무리 단계에서 스탭으로 참여했는데, 대중에게 신영균 김희갑 두 배우가 처음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 흥행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두 사람 이름으로 된 제작자의 인사말씀 형식의 신문광고를 냈다.

그런데 웬걸, 그만 대명제작 사실을 자수한 꼴이 되었고 이 바람에 두 배우에게 기회를 제공해 준 합동영화사의 곽정환 사장과 신영균 김희갑씨의 입장이 곤혹스럽게 되었음은 물론 벌금마저 물었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세 분께 송구스러운 마음이 인다. 아울러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가 성공했더라면 근사한 ‘신영균 김희갑’ 프로덕션이 생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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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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