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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쓴 글입니다. 그 첫 번째인 강우석 감독 편은 1993년에 쓴 것으로 당시 촉망받는 총각 감독이었던 그의 면모를 세월을 거슬러 다시 보게 합니다.

 


강우석 감독은 막내 덕을 톡톡히 본 경우에 속한다. 위로 형 둘과 누이 둘을 가리치고 키우느라 힘이 들었던 부모님은 막내를 거의 방목하듯 놓아 길렀다.

이거 해라, 저건 하지마라 하는 소리를 덜 듣고 자라는 대신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 가는 파트너는 당연 막내 몫이었다. 아버지가 막내를 귀여워한 탓에 막내 데리고 가는 영화구경이 수월했던 것이다.

그가 어머니 손에 매달려 미성년자 불가 영화까지 다 볼 수 있었던 시절은 우리 영화의 황금기라 칭해지는 60년대. 비옥한 구경거리 속에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감독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감독이 꿈이 되었다. 중학시절 생활기록부에 이미 ‘장래희망: 영화감독’이라고 씌어 있던 학생이었다.

강우석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특징 두 가지는 이때 벌써 발견되고 있다. 하나는 남을 웃길 줄 아는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암산을 잘했다는 사실이다. 어제 잠깐 비춘 ‘자니윤 쇼’에서의 웃음을 예로 들자, 자니윤이 물었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본인도 정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믿습니까?” 강우석 감독이 답했다.

“그건 확실해요. 왜냐하면 학창시절 나보다 공부도 휠씬 잘하고 잘나가던 친구가 지금은 내 밑에서 조감독 하고 있거든요”

이 대목에서 보조진행자인 조영남이 일어나 발을 구르고 웃었다. 정작 본인은 태연자약, 얼굴주름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강감독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교 다닐 때도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모두들 배꼽을 쥐게 했으니까. 지금도 어느 모임에서나 강우석 감독의 말 한마디들은 그 자리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만든다. 그의 영화에 살아있는 코미디 감각은 이렇게 ‘천연적인’ 것이다.


 아이들한테 다른 건 다 그만두고 암산을 시키라고 지금도 주장하는 강우석 감독은 중학시절 암산왕에 뽑혔던 ‘암산천재’이다. 수학도 아닌 영화에 과거 암산왕 기록이 뭐 필요할 것이냐 하겠지만, 그가 영화를 찍는 스타일에서 그 기록은 빛을 발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동시에 편집을 하고 필요한 부분과 불필요한 부분을 첨삭하는 데 아주 빠르다. 숫자 대신 영화 커트를 암산한다고 할까.

그 결과 강우석 감독이 쓰는 필름은 기록적인 만큼 적다. 낭비가 거의 없는 것이다. 여태까지 만든 일곱 편 가운데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단 한 커트도 잘라낸 것이 없었다. 두 번째 작품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단 두 커트를 잘라냈을 뿐이다.

성균관대 영문과를 다니다 방위로 근무하던 중 국방부 홍보영화를 찍은 것이 감독의 꿈이 실현되는 예비단계였고, 방위 제대 후에는 아예 학교까지 중퇴하고 영화의 길로 들어섬으로써 생활기록부의 희망사항은 현실이 되었다.

정인엽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한 첫 작품이 ‘애마부인’으로 2편까지 조감독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적성에 도무지 맞지 않아’ 러브신을 찍지 못한다. 그의 영화에는 키스신도 드물고 가장 ‘위험한’ 것이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초반부에 나오는 자동차 안 정사장면이다. 그것도 내용상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후딱 집어넣은 것이다.

흥행 감독 밑에서 일하던 조감독은 통상 데뷔하기가 쉽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은 그 때문에 오히려 어려웠던 경우다. 제작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지금도 강감독이 여전히 못하고 있는 그쪽, 애정영화였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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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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