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시리즈는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1993년에 쓴 글입니다. 첫 번째인 강우석 감독 편에 이어 한국 영화계 1세대 매니저 방정식씨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배우와 매니저가 함께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

배우는 머리가 벗겨져 가발을 쓰고 하이틴 스타에서 멜로드라마 주인공 역을 하고 있고, 매니저는 흰머리를 휘날리며 여전히 그 배우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이덕화와 방정식씨. 배우와 매니저로 만난 지 올해로 18년째다. 둘 사이의 호칭은 ‘덕화’와 ‘형’이다. 다섯 살 차이니 호형호제가 제격이다.

방정식씨 별명을 ‘방돌이’라 지어준 이덕화에 질세라 방정식씨가 이덕화에게 붙여준 별명은 ‘개덕화’이다. ‘개처럼 열심히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둘의 별명이 모두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것이니 그 또한 연분인 것 같다.

방정식씨가 이덕화를 만난 것은 1976년.

“덕화가 데뷔해서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그 당시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하이틴물시리즈로 막 인기를 얻고 있었죠. 지금은 KBS2텔레비전이 된 TBC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순식간에 형! 형!하며 호감을 가져 주었고 나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방정식씨는 제작부장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잘해줘도 혹시 다른 주머니차고 제작비 슬쩍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는 풍토에 염증이 돋았다.

그래 차라리 한 인간에게 내 힘을 투자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이덕화 매니저 일보는 것을 승낙했다. 이덕화 인기는 대단했다. 여고생 스타이던 임예진과 주연한 ‘진짜 진짜 잊지마’가 전국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로 두 사람만 출연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이덕화와 함께 9번 버스 타고 충무로 출근

방정식씨는 ‘9번 버스’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알다시피 이덕화는 50~60년대를 주름잡던 악역 전문 배우 이예춘씨의 아들이다.  하이틴 스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덕화지만 생활은 아주 어려웠다. 이예춘씨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누워 있었기 때문에 약값과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때 덕화네는 우이동 산 밑 전셋집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장위동에서 살았어요. 차도 없던 시절이라 둘이서 늘 9번 버스를 타고 같이 다녔죠. 아침에도 내가 전화로 덕화를 깨워서 9번 버스를 타고 같이 나왔어요. 그 버스가 딱 충무로까지 오잖아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방정식씨가 이덕화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고 있는 것은 그가 인정하는 이덕화의 됨됨이가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단역부터 시작했고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며 살아온 터라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연기자가 이덕화다. 새 작품을 시작하면 옆에서 보는 그가 감탄할 정도로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그 노력과 탐구심이 ‘별로 잘생기지도 못한’ 그를 현재까지 스타로 군림하게 한다.

오랫동안 이덕화를 곁에서 지켜봐오면서 방정식씨가 가장 가슴아팠던 때는 이덕화가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다.


오토바이 사고로 1년여 입원한 이덕화

이덕화는 한참 상승세를 타던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버스와 정면충돌한 대형사고를 일으켰다. 워낙 사고가 커서 입원해 있던 기간만도 1년여였고 앞으로 연기자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한참 잘 나갈 때였는데 꼼짝달싹 못하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더라구요. 거기다가 보상비 문제로 버스회사 쪽하고 소송이 붙었어요.”

버스회사측은 전적으로 이덕화 잘못이었으니 입원비도 내줄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이었다. 당시 이덕화는 입원비를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방정식씨는 버스 회사측과 협상을 해보려 했으나 전혀 양보할 기미가 아니었고 결국 재판이 걸리게 되었다.

“재판 안해본 사람은 그 심정 모를 거예요. 내일이 재판이다 싶으면 그전날은 밤새 잠을 자지 못해요. 지면 안되는데, 그래도 지면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그때 방정식씨는 새치처럼 흰머리가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남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다.

결국 법원 판결이 났는데, 그 판결로 인해 방정식씨는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덕화 형편보다는 버스회사 형편이 나으니 병원비와 보상금을 지급하라, 앞날이 유망한 연기자를 이대로 주저앉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는 판결이 난 것이다.

그러나 이덕화가 입원해 있는 동안 부친 이예춘씨가 타계해 이덕화가 가슴 아파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때 이덕화 병상을 지키던 ‘이쁜이’라는 애칭의 여인이 매스컴에 노출되었는데, 지금의 부인이다.

사고를 내기 전 이덕화는 TBC인기프로 중 하나는 ‘장수만세’에 게스트로 자주 나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던 이 프로그램은 장미희가 데뷔하기 전에 보조 MC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덕화가 사고로 누워있고 병원비도 문제라는 소식에 ‘장수만세’ 할머니들이 병문안을 왔다. 할머니들은 꼬깃꼬깃 쌈지 돈을 털어 내놓고 갔다. 천원짜리에서 백원, 십원 동전까지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구요. 그분들을 보고, 나나 덕화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재기해야겠구나 하는 욕구가 솟았어요.”

그렇지만 배우가 옴쭉 못하고 누워있으니 매니저 본연의 일이 할 것이 없었다. 방정식씨로서는 고통스럽기도 한 시간이었다. 그때 새로운 제의가 들어왔다. 정윤희씨의 매니저 일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계속>





 

신고
Posted by ⓗⓚⓢ 인터뷰36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