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 그 인터뷰’는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1993년에 쓴 글입니다. 첫 번째인 강우석 감독 편에 이어 한국 영화계 1세대 매니저 방정식씨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배우 정윤희가 방정식씨에게 매니저 일을 봐주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의사타진을 해온 것은 그 자신이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978년작 <나는 77번 아가씨>가 흥행에 성공하자 여지저기서 출연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고 혼자 결정하기 힘들어진 정윤희는 매니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70년대 트로이카라면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을 들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세 여배우가 모두 방정식씨한테 여러 경로로 매니저 부탁을 해왔다. 방정식씨는 심사숙고했다.

“난 성격이 꼼꼼해서 금방 결정을 못해요. 정윤희씨 매니저를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6개월이나 걸렸어요. 왜냐하면 그 배우의 인간성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사람 됨됨이를 파악하지 않고 어떻게 한배를 타겠어요.”

그래서 일단 그 제의를 묻어두고 퇴원한 이덕화와 함께 요양차 연포로 내려가 3, 4개월을 머물렀다. 그곳에서 이덕화가 ‘정답’을 가르쳐주었다. 정윤희가 가장 ‘영화적’인 용모를 지니고 있으니 정윤희 매니저 일을 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마침 텔레비전 드라마에 이덕화, 정윤희가 함께 출연하는 기회가 있어 그 김에 수락을 해버렸다. 두 사람 매니저 노릇을 동시에 하게 된 것이다.

정윤희와는 6년 동안 호흡을 함께 했다. 배우로서 물이 오르기 시작하여 톱스타로 자리를 잡고, 배우생활을 그만둘 때까지 줄곧이었다.

방정식씨가 정윤희 매니저로 자리잡자, 장미희는 어머니가, 유지인은 언니가 하다가 나중에는 윤석선씨가 각각 매니저 일을 보게 됐다.

“여배우 관리는 남자배우보다 휠씬 힘들어요. 뜬소문이 많이 떠돌아다니잖아요. 일일이 대꾸할 수도 없고 주간지끼리 연예기사 경쟁이 붙었던 70년대에는 말도 못하게 시달렸어요.”

주간지뿐 아니다. 술꾼들의 내기에도 시달렸던 적이 있다.

정윤희가 ‘벌레먹은 장미’에 출연했을 때 얘기다. 애초부터 방정식씨는 극구 출연을 만류했다. 본격적인 성애물의 초창기 영화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출연해봤자 이미지에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할 의사가 있었다. 매니저는 막고 본인은 호기심을 보이니 제작자가 정윤희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일을 추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출연을 한 다음, 하루는 밤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였는데 용건인즉 <벌레먹은 장미>에서 러브신을 한 당사자가 정윤희인가 아닌가로 술자리에서 내기가 걸렸다는 것이다. 함께 출연한 다른 여배우가 러브신을 했고 정윤희는 하지 않았다고 답을 해줬지만 기분이 영 아니었다.

그때는 막 영화가 비디오테이프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벌레먹은 장미>는 비디오 시장에서도 인기였다. 그런데 들리는 말이 심상치 않았다. 술꾼들의 내기 전화에는 이유가 있었다.

“청계천에 비디오를 불법으로 편집해서 파는 데가 있었어요. 쫓아가서 봤더니 정윤희씨 얼굴에 공연한 여배우 몸을 교모하게 편집해 놓은 거예요. 그러니 화면으로 보면 영락없이 정윤희씨가 진한 러브신을 하는 것으로 보이죠.”

70년대 배우들이라면 거의 한 번씩은 출연할 만큼 이상한 붐을 일으켰던 호스티스물 전성기. 그 시절 여배우 매니저 노릇은 이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근 15, 6년 전 한국 영화계의 트로이카 여배우로 일컬어진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하늘의 별을 따기와 매한가지였다. 방정식씨가 기억하기로는 이 세 여배우가 한자리에 모였던 일은 딱 한 번, 한 여성지의 기사 때문이었다. 그것도 석 달이나 걸려 겨우 성사된 일이었다.

60년대 트로이카라 일컫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는 셋이서, 혹은 둘씩 같은 영화에 출연한 경우도 있었지만 70년대 세 여배우는 한 번도 같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정윤희와 장미희가 공연했던 것이 유일하게 한 작품 ‘내가 버린 여자 2부’ 였는데 흥행에는 실패했다.

세 여배우 가운데 장미희는 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왔고 유지인은 가정주부로 틀이 완연하게 잡혀 있으며 정윤희도 결혼 후 영화계를 떠났다.

“사실 정윤희씨는 참 아까운 배우예요. 처음에는 외모만 빼어나게 예뻤을 뿐 연기력은 뛰어나지 못했었잖아요. 그런데 상을 두 번 받고 나서는 연기에 눈을 뜬것 같았어요. 본인도 한번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가 있었고 정윤희씨 자신에게도 안타깝지만 우리 영화계로서도 손실이죠”

인형처럼 예쁘기만 했던 정윤희가 연기자로서 성숙하기 시작한 시점은 텔레비전 드라마 ‘야, 곰례야’부터라는 것이 방정식씨 이야기다. 극히 도회적인 얼굴이 순박한 시골처녀로 변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어 영화 ‘뻐꾸기는 밤에도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등에서 무르익었다. 81, 82년에 대종상 등에서 수상한 여우주연상은 그 가능성에 대한 격려이기도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이라는 방정식씨 말을 전제로 하고 배우 정윤희가 그만큼 이르기까지는 매니저 방정식씨의 ‘관리’가 견인차 노릇을 했다.

지금은 작고한 장석준 촬영감독은 정윤희를 무척 아꼈다. 얼굴 어디다 카메라를 갖다 대도 흠잡을 데 없었기 때문이다. 평면적이거나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의 여배우들은 조명이나 카메라 각도에 따라 얼굴 분위기가 확확 달라지므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윤희는 어디서나 OK였다.

“장석준 감독이 정윤희씨 출연 영화를 찍을 때면 버릇처럼 그랬어요. 제발, 아침에 일어나 눈만 비비고 촬영장에 나와라, 화장이 필요하면 필름 종류에 따라 그때그때 알려줄 테니 아무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로 나와라가 그 양반 주문이었어요. 그래도 배우가 어디 그런가요. 화장을 하게 되죠. 내가 보기에도 정윤희씨는 맨얼굴이 제일 예뻤어요.”

그래서 방정식씨는 지금도 정윤희가 그런 영화 한편 찍고 그만뒀더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무인도 같은 곳을 배경으로 화장기 하나 없는 원시의 얼굴로 정윤희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내보이는 영화.

1984년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과 결혼한 후에도 정윤희는 3,4년 동안 연기에 대한 미련을 방정식씨에게 내비쳤다. 그러나 젊고 예쁜 신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태어나고 있는 터라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다.

이보희가 주인공을 맡은 <접시꽃 당신>도 정윤희가 해볼까 하던 작품이었는데 결국 견고한 울타리를 뛰어 넘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계속>





 

신고
Posted by ⓗⓚⓢ 인터뷰36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