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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1993년에 쓴 글입니다. 첫 번째인 강우석 감독 편에 이어 한국 영화계 1세대 매니저 방정식씨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배우한테 이상한 소문이 돌 때 매니저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장본인은 연락을 두절해 버리고 애꿎은 매니저한테만 전화가 빗발친다.

70년대는 주간지에 가십기사를 참 많이 실었어요. 그중에서 제일 많은 것이 ‘누구는 누구와 뜨거운 사이’라는 것이었죠. 신문 가판대에 그런 제목을 단 주간지들이 쫙 깔리면 황당해요. 기자들 하고 숱하게 싸웠어요. 뜬소문으로 기사를 쓸 때는 정말 열불이 나요. 아니, 확인하고 쓰면 어디가 어떻게 되나요? 배우하고 연락이 안 되면 매니저인 나한테라도 확인 전화 한번만 하면 되는데 그걸 안해요.”

지금이야 호텔 커피숍이 일반인에게도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아주 특수한 사람들만 드나드는 곳으로 여겨졌다. 특히 스타들은 사람들 시선이 번잡한 일반 찻집을 피해 호텔 커피숍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그냥 아무개 스타가 저기서 누굴 만나 커피를 마시는구나 하고 지나치면 될 일인데 제보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아요? 지금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아무개가 아무개를 만나고 있다고 주간지 같은 데 전화를 거는 거예요. 호텔이라는 장소 뉘앙스가 좀 그렇잖아요. 그런 전화를 받으면 영락없이 그 다음에 색깔 있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주간지 톱기사로 표지를 장식해요. 미칠 노릇이죠.”

연예인 가십기사는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정정기사를 쓰는 예가 없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그 기사를 기정사실화하여 받아들인다.

동료영화인들까지 “그 기사 정말이야?”하고 호기심 있는 눈길로 물을 때면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 속에서 홧불이 타오르고 밷는 말만 거칠어진다.

배우와 줄곧 함께 일하고 움직이는 매니저이기 때문에 방정식씨는 배우가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느낌’으로 안다. 그 느낌이 뜻밖의 부재나 연락두절로 간헐적으로 계속되면 현실로 확인된다. 그럴 때는 매니저라기보다 손윗사람으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본인이 완강하게 부인하며 아무 일도 없다고 하면 하는 수 없지만 사실을 얘기하면 옳고 그름에 대한 충고를 해준다. 그렇더라도 결정과 행동은 배우 자신의 몫이다.

곤욕도 많이 치렀지만, 당대 톱 여배우 정윤희의 매니저를 하면서 ‘스타의 위력(?)’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었다.

정윤희는 패션 감각이 아주 뛰어나 아무리 헐한 옷을 걸쳐도 돋보였다. 방정식씨가 보기에 정윤희는 절대 비싼 옷을 사 입지 않았다. 그래도 외국에 촬영을 갔다 오거나 하면 선물로 넥타이 20여개를 사와서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 감독 등 스태프들에게 선물했다. 방정식씨도 당연히 그 넥타이를 선물 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정윤희가 TV에 출연하고 있을 때 작품을 끝내고 드라마 파트 거의 전원이 모이는 쫑파티가 열렸다.

그 자리에 방정식씨는 정윤희가 사다준 넥타이를 매고 나갔다. 그런데 정윤희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엇인가 재미있어 죽겠는 걸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거기 참석한 프로듀서며 카메라맨들 가운데 한 90퍼센트가 전부 정윤희씨가 사다준 넥타이를 매고 나왔던 거예요. 정윤희씨는 자기가 선물한 것이니까 보면 다 알잖아요. 나도 나만 그 넥타이를 매고 나간 것으로 여겼으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마음으로 매고 나왔을 거 아니에요.”


한동안을 기자들 질문세례로 ‘고문’을 당하고 나니 지친 방정식씨는 한 1년을 쉬었다. 영화보다는 방송일에 열심이던 이덕화와 간간이 CF출연에 관한 상의나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영하로부터 매니저를 맡아주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때 이영하는 약간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결혼을 하고 해서 연기자로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한 뒤 맡기로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선택이었다. 방정식씨가 이영하의 매니저로 첫 번째 선택한 작품이 ‘화녀촌’이었는데 86년도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안개기둥’의 남우주연상도 이어졌다.

“이영하씨의 장점은 성실성이에요. 그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절대 촬영에 늦는 법이 없어요. 늦기는커녕 거의 스태프들 집합시각과 거의 동시에 나와요. 그런 자세나 노력하는 점들은 다른 배우들이 본받을 만하죠.”

이영하에 이어 매니저를 봐주고 있는 배우는 고 이만희 감독의 딸인 이혜영이다.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심해서 여배우 매니저는 안하겠다 싶었는데, 영화기획자 이춘연씨가 이혜영씨 매니저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이혜영을 만난 방정식씨는 처음에는 “나하고는 잘 안 맞는 배우인 것 같다”고 결론은 내렸다.


“만나보니까 이헤영씨의 고민은 왜 나는 늘 조연만하는가였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주연만 하려고들면 내가 굳이 매니저를 볼 필요가 없겠다구요. 그래서 그냥 헤어졌어요.”

그후 1년쯤 지나서 다시 이춘연씨를 통해 연락이 왔다. 이혜영이 “방부장님이 하라는 영화는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어요. 난 어떤 작품을 하라고 강요하는 일은 결코 없다. 작품이 맞을 것 같으면 상의를 한다. 그 말에 오케이를 해서 지금까지 이덕화, 이영하와 함께 매니저를 보고 있죠.”

이혜영 매니저를 맡고 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일찍, 구체적으로 꼽자면 ‘땡볕’을 끝내고 바로 자신과 연결이 됐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그동안 괜찮은 작품을 놓친 일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그들도 우리처럼’에서 심혜진씨가 했던 역이 이혜영씨한테 섭외가 들어왔었대요. 만약 내가 그때 매니저를 보고 있었으면 거절하게 안했어요. 얼마나 괜찮은 역입니까.”

배우가 작품을 많이 한다고 해서 경력이 붙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두 작품이라도 결정적인 역에 출연해야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방정식씨는 이혜영의 고민을 안다. 출연요청이 오는 역이 늘 야하고 ‘끼’있는 역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혜영이 정말 하고 싶은 역은 조선 여인네 같은 토속미가 물씬 넘치는 역이다.

‘개벽’에서 그 한을 조금 풀기는 했지만, 방정식씨가 보기에 이혜영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너무 다르게 보여진 대표적인 여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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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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