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본격적인 뮤지컬 영화는 1975년 이형표 감독이 만든 <아이 러브 마마>이다. 원래 이 영화의 타이틀은 <김선생과 어머니>로 처음에는 순수한 의미로서 남궁원의 ‘김선생’과 ‘어머니’의 최은희를 지칭하여 정했는데, 영화를 완성한 후 신상옥 감독이 어차피 음악영화는 서구적인 뉘앙스를 풍겨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 러브 마마’로 변경시켰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영화는 가수 현인이 출연한 1948년 <푸른언덕>으로 멜로드라마에 주제가를 여러 번 입혔고 1961년 인기가수 박재란이 나온 <천생연분>이 있으나 흥행이 되지 않아 충무로 기획에 금기시 되는 장르가 되었다.

<아이 러브 마마>는 이상현 작가의 각본이 워낙 탄탄하여 처음에는 신상옥 감독이 직접 연출하려고 했으나 음악에는 전문지식이 약하여 다재다능한 재주꾼 이형표 감독을 기용했다.

이형표 감독은 <아이 러브 마마>를 감독하면서 종래의 영화개념인 종합예술을 뛰어 넘어 ‘편집예술’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뮤지컬 영화에는 음악과 영상의 일치를 위해 빈틈없이 계산된 편집이 필요하다 해서 생긴 말이다.

이형표 감독은 ‘계산적인 뮤지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흘러간 영화상영관에서 <7인의 신부> <황태자의 첫사랑> <파리의 아메리카인> <왕과 나>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로즈마리> 등 고전 무지컬 영화들을 연구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었다.

댄싱감독으로 안무가인 한익평과 쇼구성의 진행자로는 황정태, 미술디자인으로는 장종선, 의상디자인에는 오완영 등으로 스탭을 구성하여, 본격적인 촬영준비를 하였으나 이 영화를 소화해낼 뮤지컬 배우가 문제였다.

노래하고 춤추며 내면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를 찾을 수 없어 수없이 테스트한 끝에 신필름 작품에 많이 출연한 서미경을 위시하여 김경애와 송명은을 발굴하여 여자 3명을 확보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자로는 모두 현역가수를 기용하였는데 당시 젊은이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었던 윤형주, 김세환, 박상규를 픽업하여 연극연습과 같은 강행군으로 리허설을 반복하였다.

<아이 러브 마마>의 줄거리는 이렇다. 밴드 마스터였던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여대생 자매인 진숙·선숙· 미숙은 외로운 어머니에게 짝을 찾아드리기로 하고 미숙의 어학강의를 맡은 로맨스그레이 김교수를 택하여 주도면밀한 작전을 펼친다. 독신주의자인 김교수와 어머니는 요지부동으로 결혼하지 않겠다며 고집이다. 한편 쇼단장은 세 자매의 재능을 보고 쇼를 구성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김선생과 어머니는 결국 결혼에 골인하고 세 자매의 전송을 받으며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신고
Posted by ⓗⓚⓢ 인터뷰36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