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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80,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1993년에 쓴 글입니다. 그 세 번째로 8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창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얼마전 지하철 출근길 사람들이 펴든 스포츠신문에 ‘배창호 감독 결혼’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올해 나이 꽉찬 마흔에 아직 총각인 배 감독이 드디어 결혼을 한다니, 만나보지 않을 수 없다.

“4월9일 정동교회에서 식을 올립니다. 오세요.”

사랑에 빠져있는 배창호 감독의 시원시원한 청첩장이다.

작년 초 대학 후배의 소개로 처음 만나는 순간 마음에 들었단다. 신부는 인테리어를 하는, 영화 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짝사랑만 많이 했기에 여자 만나면 말도 잘 못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얘기가 술술 잘 나오더라구요.”

일곱 번째 만났을 때 청혼을 했고 아직 연애 감정 단계에 있던 신부 쪽은 당황했지만 승낙했다.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날씬해진 배 감독에게 연애를 하면서 다이어트를 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예상 밖의 답이 나온다.

“혼자 살 결심을 했었습니다. 그러려니까 방만했던 삶의 형태를 추슬러야 되겠더라구요. 술도 덜 먹고 건강을 생각해서 살도 좀 빼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산으로 운동을 하러 다녔고 줄넘기도 했다. 술을 줄이고 식사량도 줄였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10여Kg이 빠졌고 보는 사람마다 달라졌다, 젊어졌다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듣는 재미가 또 쏠쏠했단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살 결심에 시작한 다이어트가 결과적으로 좋은 짝의 멋진 남편 모습이 되게 한 것이니, 인간이 스스로 짠 삶의 시간표와는 또다른 시간표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이제 배창호로서 살아가야지요. 한 여인의 남편이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이웃의 친구이고, 그러면서 영화감독으로 말입니다.”

결혼하면 여태껏 잘 몰랐던 여성의 심리에 대해 알려 할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영화에도 반영될 것이란다.


 


‘아직 노총각 신세인 나는 결혼식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가끔 해보곤 하지만 실제로 치를 결혼식은 내가 만든 <기쁜 우리 젊은 날>의 결혼식 장면처럼 하객들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아이들은 빽빽 울어대고 주례의 상투적인 주례사가 지루하게 느껴질 산만하고 평범한 결혼식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배창호 감독이 쓴 글의 일부분이다. 남의 결혼식에는 꽤 많이 다녀보았지만 자신의 결혼은 여전히 오리무중일 때 쓴 글이다. 이제 한달여를 앞두고 있는 진짜 결혼식이 과연 <기쁜 우리 젊은 날> 결혼식 장면과 같을지.

“결혼 준비 하는 게 어떻게 영화 찍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영화는 매일 찍지는 않잖아요.”

나이 마흔에 장가가는 새 신랑이 투정을 부린다.

여태까지 자신이 만든 영화 속에서 결혼식 장면이 있던 것이 4편인데 정작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결혼식 장면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에 나오는 상이용사의 결혼식이다. 두 팔을 잃고 돌아와 방황하는 남자와 결혼 서약을 하는 신부는 사랑의 맹세와 함께 남자의 차가운 의수 위에 자신의 따뜻한 손을 포갠다.


배창호 감독은 자기 영화를 관통하는 큰 줄기가 ‘사랑’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기독교 신자인 그가 뜻하는 사랑이란 그 폭이 넓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사랑은 여태까지 외길이었다. 옹근 사랑이 아니라 짝사랑이었다. 배창호의 짝사랑이 모습을 드러내는 영화가 <기쁜 우리 젊은 날>과 <적도의 꽃>이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며 교내에서 알아주는 배우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던 청년 배창호는 이웃 대학 연극반 여대생을 처음 본 순간 빠져들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했다. 그 여학생 집으로 전화를 걸지만 여학생이 받으면 끊어버리고 교문 앞을 서성이며 기다리다가도 본인이 나타나면 숨어버렸다. <적도의 꽃>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집을 훔쳐다보면서 고백을 하지 못하는 미스터M은 이때 배 감독 모습이다.

겨우 용기를 내서 첫 데이트를 하던 날.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안성기가 황신혜를 만나러 가는 날 아버지 양복을 줄여 입고 나가잖아요? 이때 제가 그랬어요. 그런데 그 여대생이 마주 앉는 순간 마구 도망가고 싶어지더라구요. 결국은 엉뚱하게도 다음 연극의 찬조출연을 부탁만 하고 헤어졌어요.”

이후 배 감독은 다시 연락도 못하고 술만 들이키며 괴로워했다. 보다못한 친구가 묘책을 냈다. 60년대 청춘영화 흉내를 내보라는 것이었다. 청춘영화 히어로 신성일이 눈물을 글썽이며 상대 여배우 뺨을 때리면 “사랑해요”하고 안기지 않더냐고, 그렇게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낮에 술을 잔뜩 먹고 용기를 내 그 여대생을 불러냈죠. 몇마디 얘기를 하다가 이때다 싶은 순간 여대생 뺨을 두 대나 때렸어요. 근데 저는 신성일이 아니더군요. 여대생은 안기는 대신 다방을 뛰쳐 나갔어요. 그것으로 끝이었죠.”

과연 이 사람이 80년대 한국영화계를 쥐락펴락했던 그 흥행감독 맞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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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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