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시리즈는 80,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1993년에 쓴 글입니다. 그 세 번째로 8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창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스스로가 ‘처참한 실패’라 자인하는 <고래사냥2>를 만들기 전 배창호 감독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깊고 푸른밤>의 성공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원작자 최인호가 자신의 문학세계를 되돌아볼 겸 해서 미국 여행을 떠났고 황량한 사막을 차 한 대로 가로지르는 두 사나이의 이야기를 소설로 했다. 그것이 소설 <깊고 푸른밤>이다. 거기에 다른 소설 <물 위의 자막>을 합하여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깊고 푸른 밤>은 안성기와 더불어 당시 영화계를 떠나 미국에 체류중인 장미희를 캐스팅해서 화제가 됐다.


“양념 들어간 것의 극치를 이룬 영화죠. 교묘하게 잘 짜여졌어요. 그 영화 찍으면서 안성기씨한테 정중하게 사과한 일이 있어요. 장미희씨 대역과 러브신을 하게 됐는데 사실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었어요. 자책감과 모멸감이 들더군요. 부끄럽기도 하구요. 그 다음부터 러브신 연출을 안합니다.”


러브신 외에 배 감독 자신이 찍어놓고도 보지 않는 장면이 <깊고 푸른밤>에는 있다. 안성기가 장미희를 모질게 때리는 장면.


“여자 때리고 그러는 거 영 기분이 안 좋아요. 폭력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너무 직접적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고 푸른밤>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응을 얻었고 배창호 감독에게 명예와 돈을 가져다주었다. 제법 넓은 아파트도 한 채 사고 마음껏 호기를 부릴 수 있게도 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붕 떠 있던 시절이었죠. 내가 나한테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었어요. 매일 술 먹고 살만 찌고 그랬어요.”


그때 <고래사냥2> 연출 제의가 들어왔다. <깊고 푸른밤>이 가져다 준 찬사, 돈에 대한 욕심이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게 했다. 안성기도 최인호도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을 귓등으로 흘렸다.

촬영 전날은 술 마시는 법이 없는 배 감독은 <고래사냥2> 크랭크인 하던 날 새벽2시까지 술에 절어 있다가 촬영현장으로 나갔다.

전작의 명성을 업고 크리스마스에 개봉하던 날, 초조하게 극장 앞을 서성거리고 있던 배창호 감독에게 영화를 막 보고 나오는 여중생이 생긋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감독님, 공부 좀 열심히 하셔야겠어요.”


반응은 최악이었다. 배 감독은 이후 4, 5개월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때 비로소 영화를 왜 하지? 영화가 뭐지? 영화에서 사랑을 부르짖는데 사랑이 뭐지? 하는 것들을 깊게 생각했습니다. 내 영화 만드는 실력이 이 정도뿐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앓고 난 다음 해쓱한 얼굴에 문득 도는 맑음이 있듯이, 배창호 감독은 <고래사냥2?의 좌절로 인해 새롭게 자신을 정비했다. 그것을 1백% 반응해 만든 작품이 <황진이>다.

배창호 감독이 <황진이>를 만드는 과정은 ‘파격’이었다.

배우들에게는 계산하는 대신 느끼는 그대로를 발산하게끔 했고, 카메라는 그 느낌이 차오를 때까지 고정된 앵글로 기다렸다.

연기 계산이 정확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안성기조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했고 촬영감독 정일성도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더 심했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갖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어떤 이는 영사기가 고장나 필름이 돌아가지 않는 줄 알고 영사실로 뛰어올라 왔는가 하면, 어떤 이는 관람료가 아깝다고 물러달라고 소리를 높였다.

영화계에서도 설왕설래하기는 매일반이었다. 배창호라는 이름에 믿고 투자했던 영화사, 그 이름에 걸려있던 짭짤한 재미들에 포만감을 느꼈던 평론가, 기자들이 당황했다. 그런 와중에 ‘뛰어난 영상미학’이라는 극찬의 소리들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황진이>에 이어 두 번째 사극으로 일컬어질 <꿈>은 85년부터 최인호가 영화로 만들어 보기를 권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 작품을 감당할 만한 정신적인 배경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85년의 배창호 감독은 <깊고 푸른밤>의 성공으로 달떠 있을 때 아닌가.

4년 뒤,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끝내놓고 자신을 텅 비어놓은 채 지내던 시절, <꿈>이 다시금 생각났다. 사는 게 꿈이 아닐까 하는 마음과 더불어.

<황진이>가 인생길을 얘기하는데 있어 직설화법을 쓴 것이라면 <꿈>은 승려 조신의 꿈을 통한 간접화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사랑과 대비되는 단어는 욕망, 조신은 달래를 가지려는 소유의 욕망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끝내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마지막에 조신은 불상 앞에 엎어져 황소의 울음으로 욕망에 젖어있던 자신을 씻어내야 한다.

그런데 조신 역을 맡은 안성기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우는 연기였다.

아역 배우 때부터 잘 못 운다고 알밤을 맞은 안성기였다.


“더 기다렸다면 안형의 진짜 울음이 터졌을 겁니다. 아쉽게도 시간이 촉박했어요.”


양파를 짜서 코에 발라줄까, 최루가스를 뿌려줄까 - 별 연구를 다하다가 그냥 안성기의 맨 울음을 찍었던 배 감독은 지금도 “안성기씨에게는 울음이 화두”라고 생각한다.





 

신고
Posted by ⓗⓚⓢ 인터뷰36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