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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80,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1993년에 쓴 글입니다. 그 세 번째로 8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창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배창호 감독이 ‘신인연기자상’ 수상을 놓친 것은 안타까운 일 중 하나이다. <고래사냥>에서 가수 김수철을 픽업하여 신인상을 수상케 했듯이 바로 그 자신이 그럴 수 있었는데 말이다.

감독 배창호가 배우 배창호로 잠시 외도를 했던 것은 자신의 조감독을 했던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1989)이었다. 주연급 조연인 ‘이발사 문도석’ 역이었다.


“처음에는 안하려고 했어요. 이명세 감독하고 시나리오작업을 같이 했는데 한 반쯤 썼을 때 이 감독이 그러더군요. 문도석 역은 창호형이 좀 해주면 좋겠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죠. 이 감독은 문도석 역은 뚱뚱해서 배도 좀 나오고 머리도 벗겨져야 제격인데 내가 딱 소리 난다는 거예요. 자꾸 회유하는 걸 듣다 보니 슬며시 궁금증이 돋더라구요. 연기자의 세계는 어떤 건가, 그래서 한다고 했죠.”


알고보면 배 감독은 연세대 시절 ‘중량감있는 배우’였다. 대학 1년 동안은 거의 연극에 미쳐 있다시피 했다. 오태석씨가 연출한 <제17포로수용소>에서 극의 생기를 불어넣는 익살맞은 연기를 해낸 전력도 있다.


“<개그맨> 찍은 후 시사회도 못 보고 미국 신호세주립대학에 한동안 강의를 하러 갔다 왔어요. 나중에 부평극장에서 봤는데, 처음엔 못봐주겠더라구요. 목소리는 갈라져서 대사 전달은 안되지···. 중간부터는 그래도 좀 나아졌는데 춤추는 장면하고 여장하고 나오는 장면은 도저히 못보겠습디다. 마치 자의식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여배우가 누드로 출연한 것 같았어요.”


안성기, 황신혜와 함께 밤무대에서 ‘수지Q' 음악에 맞춰 춤추는 장면에서 배감독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래도 소꿉놀이 하듯 재미있게 찍고 있는데 이명세 감독이 나보고 여자 분장을 하고 도망 다니라는 거예요. 부끄럽더라구요. 그래도 감독이 시키는데 어떡해요. 에라 이왕 팔린 몸인데… 원피스 입고 스타킹 신었죠. 이장호 감독이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어이없어 하던지····.”


<개그맨>에 함께 출연한 황신혜는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로 영화에 데뷔했다. 이어 <꿈> <개그맨>까지 그 인연은 이어졌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찍을 때 황신혜씨의 연기에 대해 사실 좀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놀랐던 일이 있었죠. 덕수궁 길에서 이별 장면을 찍을 때였어요. NG가 일곱 번인가 났는데, 매번 똑같이 눈물 한방울을 똑 떨구더라구요. 만만치 않은 연기자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기자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꼬방동네 사람들>을 찍은 김보연 같은 이는 슈팅 들어가기 전 상대 배우 안성기에게 노래를 불러달라는 둥 하여 함께 영화 분위기를 잡으려는 쪽이고, 장미희 같은 이는 자신이 극중 역할을 스스로 느껴내는 쪽이다. 황신혜는 메소드(Method)연기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배우 가운데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배우 안성기다.

조감독 시절에 <바람불어 좋은날>과 <어둠의 자식들>에서 함께 일했고, 배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부터 최근작 <천국의 계단>까지 열두 작품에 안성기가 출연했고 <개그맨>에서는 공연도 했다. 만 10년 동안 동고동락하고 있는 셈이다.

배 감독이 안성기를 처음 본 것은 1960년. 아역 스타 시절이었다. 영화 구경을 좋아했던 어머니를 따라 왕십리에 있는 촬영소에 구경갔다가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 출연하고 있는 어린 안성기를 먼발치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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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가 배 감독을 처음 본 것은 <바람불어 좋은날>을 준비하던 1979년. 성궁다방에서 이장호 감독을 만날 때 배석한 조감독으로서였다. 이 감독은 안성기가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을 맡기에는 너무 선이 굵다고 여겼지만 배창호의 적극 추천을 받아들였다.

<바람불어 좋은 날> 첫 촬영 날 이장호 감독은 조감독 일도 제대로 못하느냐,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두 사람을 각각 호되게 질타했다. 촬영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옆에서 훌쩍훌쩍 울음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안성기였다.

안성기가 결혼할 조짐을 제일 먼저 눈치 챈 이도 배창호 감독이었다. 미국에서 올 로케를 한<깊고 푸른밤>을 찍을 때 안성기는 아파트 방에 애인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었다. 안성기는 <깊고 푸른밤> 촬영을 끝내고 곧 결혼했다.

배 감독이 연기자 안성기를 ‘무채색의 배우’라서 좋아한다면, 인간 안성기의 성실한 생활태도는 본보기로 여기고 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하루는 술을 잘 먹지 않는 안성기가 잔뜩 취해서 배창호 감독을 찾아왔다. 커피 CF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너무 갈등이 생겨 의논차 왔던 것이다. 영화배우가 영화 아닌 것으로 모습을 보이고 돈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오히려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연기에 몰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주었지만 안성기의 자세를 배 감독은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19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살았던 배창호 감독은 90년대 들어오면서 잠시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배창호가 되려 한다.


“나도, 내 영화도 이제부터 다시 젊어질 겁니다. 살도 빼고 장가도 들고 하니까 새로워져야죠. 다음 영화는 20대 때 데이트하던 얘기를 발전시킨 것이 될 겁니다. 요즘 내 신부감하고 데이트하는 것이 바로 그 시나리오를 쓰는 작업이기도 하죠. 연애하고 결혼하고 신접살림도 꾸리고 하는 과정이 다 들어가겠죠.”


배창호 감독은 결혼함으로써 여성에 대해 알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결혼한다고 여성이 그저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알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곧 이렇게 정정했다. “여성에 대해 느껴보고 내 속에 여성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말이다.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을 보고 난 뒤 흡족했던 작가 최인호는 이렇게 ‘애석함’을 표한 적이 있다.


“그(배창호 감독)의 첫사랑 여인은 좋은 남편감으로서는 부족할지 모르나 명성 있는 남편감으로는 으뜸인 그를 놓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지금, 아마도 최인호는 자신이 한 말을 정정할 것이다. “그의 배필이 될 여인은 좋은 남편이 되고자 하는 자세가 으뜸인 사람을 잡는 것이다.”라고.



*약속 지킨 배창호 감독

인터뷰 중에 “신부감하고 데이트하던 것이 바로 시나리오 쓰는 작업”이라고 한 결과물은 1996년 영화 <러브 스토리>로 완성됐다. 괴짜 감독과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배창호 김유미 부부가 나란히 주연을 맡아 자신들의 실제 이야기를 연기했다. 이후 부인 김유미씨는 1999년 배창호 감독의 <정>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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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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