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봉은 한국영화사(史)에서 최초로 만난 ‘관능’의 여배우였다. 동시대를 풍미했던 ‘최은희’가 정적인 연기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면 도금봉은 그 정반대의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곤 했다.


1930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정옥순. 악극단에서 연기를 익히며 ‘지일화’라는 예명을 쓰다가 조긍하 감독을 만나 <황진이>(1957)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조긍하감독의 <황진이>는 이후 한국영화에서 여러 번 리메이크되는 ‘최초의 황진이’로 기록되어지는 작품이다.


요염한 얼굴과 당시 여성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풍만한 육체를 바탕으로 도금봉은 <황진이>를 통해 이전까지 유례가 없었던 ‘요부’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후 ‘요부 도금봉’이라는 호칭은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 유현목감독의 <그대와 영원히>(1958) 같은 거장들의 영화를 거치면서도 한 순간도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도금봉만이 가능했던 <청순><관능><악녀>의 눈빛들.


그랬던 도금봉 이기에 ‘스캔들’은 당연한 코스였다. 남자를 여러 번 바꿨느니, 연하의 남자배우와 동거를 하고 있다느니 하는 그녀를 둘러싼 염문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당시 사회에서 여배우를 바라보던 시각을 생각한다면 이런 스캔들로 도금봉은 ‘매장’되었어야 했지만 도리어 그녀는 그런 스캔들에 당당히 맞서는 자세를 취하며 ‘관능의 페르소나’로써 자신을 상징화 한다.


그런 도금봉 이었기에 ‘한국 최초의 호러 퀸’이라는 호칭은 그녀의 자리에 멈춰 선다. 1965년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를 통해 관능이란 단어위에 도금봉에게는 ‘악녀’라는 호칭하나가 더 붙는다. 그리고 <목 없는 미녀>(1966)<월하의 공동묘지>(1967)<백골령의 마검>(1969)<악마와 미녀>(1969)에 이르기까지 ‘공포영화 = 도금봉’이라는 공식을 완성한다. 당연히 그녀가 출연한 공포영화는 한국 공포영화 사상 최초의 ‘클래식 호러’가 된다.  



이 작품들 중에서도 이용민 감독의 <목 없는 미녀>와 권철휘 감독의<월하의 공동묘지>는 실로 대단했었다. ‘월향’을 독살하려고 하는 도금봉의 찬모연기 앞에 <월하의 공동묘지>를 상영하던 극장에선 관객들이 비명이 난무하며 이 두 편 모두 대 히트를 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60년대 공포영화의 르네상스가 열린 것은 눈빛만으로도 공포감을 주던 도금봉이라는 걸출한 호러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가 공포영화에 출현하지 않자 한국공포영화는 1990년대 중반 ‘김성홍’과 <여고괴담>의 등장 이전까지 깊은 침체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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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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