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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80,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필자가 1993년에 인터뷰해 쓴 것입니다. 그 여섯 번째로 영화 편집을 예술로 승화시켜온 김현 편집기사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김현 편집실에는 많은 감독들이 드나든다. 정지영, 박광수, 장선우, 강우석, 이명세, 배창호 감독 등이 혹은 그를 형이라 칭하며 일과 더불어 친분을 맺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배창호 감독은 신필름 이후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김현씨가 다시 편집일을 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줬다.

온전히 신필름에만 속해 있다가 영화사 문을 닿게 되자 김현씨는 아무런 편집 장비도 없는 맨몸이 되었다. 차라리 딴 길로 접어들고 말까, 한두 해를 보내고 있는데 배창호 감독과 제작자 황기성씨가 <고래사냥> 편집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그래서 선배의 편집실에서 <고래사냥> 편집 작업을 한 것이 말하자면 제대로 된 ‘충무로 데뷔’였다. 그때가 1982년. 계속해서 황기성사단 제작인 <어미>를 편집했고, 하마터면 떠날 뻔도 했던 영화계에 여태껏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 작품의 ‘마무리 공사’를 많이 한 까닭에 김현씨에게는 색다른 주문이 가끔 들어오곤 한다. 영화 관계 기자들이 그를 통해 감독들 취향과 스타일을 엿들으려 하는 일이 그것이다. 어느 출판사에서는 아예 책으로 ‘그 뒷이야기’를 써볼 의사는 없는지 물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무겁게 보이는 김현씨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아 모두 헛걸음을 치고 만다.

감독들의 편집 스타일은 본인의 성격과 작업방식에 따라 사뭇 다르다. 성격이 즉흥적이고 시원시원한 감독이 가장 일하기 좋은데, 이 경우는 김현씨 의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세심하고 꼼꼼한 감독들은 한 프레임까지도 붙이느냐 자르느냐로 고민한다. 갑갑하기는 하지만 완벽을 기하려는 열정은 인정한다.


“가장 황당한 경우는 많이 찍어 와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택일하는 감독이죠. 막 찍고 막 자르고. 이런 감독들이 작업할 때는 아까운 필름들이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졌다 버려져요.”


찍어온 필름을 붙이느냐 자르느냐를 결정할 때 감독들마다 지닌 개성이 드러난다.

어떤 감독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넘어가는 일을 참지 못한다. 자분자분하게 내용을 그대로 살려나가야 성에 차는 것이다. 이런 감독들 작품은 거개가 서술 위주이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함정이 있다.

반면, 과감하게 생략해 나가는 감독들도 있다.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다소 거친 감을 주는 대신 힘 있는 영화로 만들어진다.

현재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이나 신인감독들은 스토리텔링보다는 힘 있고 간결한 쪽을 택하는 경향이고, 김현씨 자신도 이야기보다는 영상 쪽을 강조하는 편집이 취향이 맞는 것 같다.

김현씨는 편집과정에서 감독들과 열심히 ‘싸운다’. 반대경우도 간혹 있지만 더 붙이자는 감독 의견에 잘라내자는 김현씨 의견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작품을 위한 거지,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닙니다. 관객들에게 더욱 전달력이 뛰어난 영화를 만들자는 뜻에서 일어나는 충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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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자기 영화를 아끼고 완성도를 높이려는 의욕이 주관적인 것이라면, 김현씨의 의욕은 뜻은 같으나 객관적이라는 입장 차이가 있다. 어느 때는 감독이 김현씨를 설득하고 어느 때는 그 반대가 되는 과정에서 영화는 걸러지고 다듬어진다.

김현씨가 제일 치열하게 싸웠던 상대는 오래된 친구이기도 한 박철수 감독이었다. <안개기둥> 편집 때 한 커트를 넣느냐 빼느냐로 무려 3시간 동안 언쟁을 벌였다.

문제가 된 커트는 부인이 남편을 일깨우고자 하는 생각을 영상화한 것인데, 투구와 갑옷을 입은 남편으로 그 몰이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김현씨가 자르자, 박철수 감독이 붙이자로 평행선 긋기를 계속하자, 보다 못한 제작자가 중재안을 내놓았다. 일단 붙여서 보고 좋지 않으면 자르자는 것이었다.


“내 손으로는 못 붙이겠으니 직접 붙여서 보십시오.”


끝까지 붙이기를 거부한 김현씨는 감독 쪽에서 붙여서 틀고 난 후에 다시 그 커트를 잘라내 버렸다. 그래서 결국 남편 역이던 이영하씨가 갑옷 입은 모습은 완성된 <안개기둥> 속에서는 볼 수 없었다.

김현씨는 박철수 감독의 대표작을 <안개기둥>이라 꼽는데 주저치 않았다. 3시간 동안 싸워 그 커트를 잘라낸 ‘투지’는 그 영화와 감독을 아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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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인터뷰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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